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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코붓다
Ecobuddha
에코붓다
실내화제문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그대의 오랜 벗 토영바람이
짧은 글로 실내화에 고하노니
네 그동안 수고가 많았구나
섬세하지 못하고 자상하지 못한 친구를 만나
때로는 험하게 때로는 함부로 끌려 다녔어도
너는 한번도 불평불만 하지 않았구나
여름이고 겨울이고 한결같이 제 자리에서
친구를 기다려 주었고
부르면 부르는 대로 원할 때마다
친구이 발걸음 옮겨주었구나
누가 있어 너만큼 자상하고 친절하게
친구를 도와주겠느냐
누가 있어 너만큼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쓰이겠느냐
너랑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어
네 꿈대로 끝까지 잘 쓰이도록 하고 싶어
떨어진 부분을 열 번이나 매워가며
질기게도 썼지만
이제 때우는 데도 한계가 있어
더이상 고쳐쓸 수 없어
너와 이별할 때가 왔구나
고맙고 미안함 맘으로
이렇게 네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노니
나의 벗 실내화여 잘 가시게
부디 새 몸으로 바뀌어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시게
그동안 그대와 함께 하여
행복했네
잘 가시게
그대의 오랜 벗으로부터
상향
에코붓다Ecobuddha
“진정강을보려면강을직접걸으
며느껴야한다”는스님의말씀
을듣고내성천을건너고있는
참여자들
- 김세진
문득 들렀습니다. 산 그림자 붉은 저녁
당신의 오래된 집도 꽃등을 달았더군요
어디쯤
걸어오실까
연신 바람은 보채고
서쪽 하늘 끝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잔약한 산새들을 보듬는 운판소리
먼 길은
소리를 좇아
더듬어 갑니다
몇 소절 슬픔 뒤로 생각도 끊어지고
꽃잎은 너덜겅 위로 시나브로 떨어져서
저 붉은
이승의 한때
잠시 흔들리는
Ecobuddha
Ecobuddha
생태적 깨달음
대안적 생활양식과 쓰레기제로운동(3)
지속 가능한 삶
자발적 포기는 기쁨이다 | 최광수
특집-에코보살 심층인터뷰
더 적게 벌고 더 행복하기. | 윤태임
내가 맑아지면 주변도 맑아진다 | 김영주
환경의 달 지부 소식
빈그릇 실천과 자기컵 쓰기 캠페인 | 편집부
에코붓다 5・6월호 | 펴낸 날 2014년 5월 27일 | 펴낸곳 사단법인 에코붓다 |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1585-16호 정토회관 2층 | 전화 02-587-8997 | 전송 02-587-8758 | 전자우편 ecobuddha@jungto.org
홈페이지 www.ecobuddha.org | 만든이 김희선, 윤정순, 이광성, 백혜은, 박기일, 장선우, 박미선, 이미영
단순하고 소박하게,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풀꽃 향기 맡으며 흐르는 강물처럼 늘 새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당신은 에코붓다입니다. 에코
붓다는 생태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생명입니다.
쓰레기제로 현장 소식
작은 씨앗이 싹이 되어 큰 나무를 이루듯이 | 김선우
음식물쓰레기 제로에 도전해 보기 | 손효은
청년 생태기행
진정 강을 보려면 직접 걸어야
부뚜막수다
EM발효액 만들기 | 편집부
에코붓다 이모저모
에코붓다 후원회원
대안적생활양식과쓰레기제로운동(3)
생태적 삶을 위한 대안적인 생활양식의 정착 차원에서 ‘쓰레기 제로운동’
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서 쓰레기란 ‘못쓰게 되어 내
버릴 물건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즉 소유자 또는 이용자 입장에서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버려지는 물건들을 우리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특정시점에서 소유권 또는 사용권을 가진 특정 주체의 가치가 개입된
지극히 편협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이 ‘쓰레기’라는 말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철 쓰레기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갔을 때 얼마든지 충분히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냥 폐기 처분되는 현실을 자주 볼 수 있다.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소비주의 풍토 속에서 아까운 물건들이 그냥 버려지
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바로 이러한 문
제들을 발생시키는 가치와 사회구조에 익숙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깊이 되돌
아보고 반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연계에서는 본래 ‘쓰레기’란 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 자연계의 생태적 순
환체계 속에서 ‘불필요한 것’이란 없다. 모든 것이 스스로 존재의 의미가 있
으며 무수한 연관 속에서 서로를 살리고 유지시키는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쓰레기라고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총체적 연관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인식체계 속에서 나온 허위의식이라 할 수 있다. 예
를 들어 벽돌이 방에 있으면 쓰레기지만 공사장에 있으면 훌륭한 건축자재가
되고, 냉장고가 부엌에 있으면 훌륭한 가전제품이지만 밭에 있으면 쓰레기
가 된다. 즉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사용되어야 할 곳에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쓰레기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안적 생활양식을 위한 ‘쓰레기 제로운동’
속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눈에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청소’의 차
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쓰레기를 얼마만큼 줄일 수 있
느냐라는 가시적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물을 본래 자기 쓰임새대로 되돌
려주기 위한 의식개혁과 사회구조 변화의 노력을 포함해야 한다.
자연계의 순환체계에 적응했던 전통적인 생활양식 속에서는 쓰레기 문제
가 심각하지 않았다. 먹고 남은 음식물은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의 먹이로 제
공되었고, 분뇨는 논밭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나마 나
오는 쓰레기들 중 다수는 난방 및 취사연료로 쓰여졌다. 이처럼 생태 순환적
인 삶의 방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오랜 경험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었다.
하지만 생활 공간 또는 마을 단위에서 ‘밥’과 ‘똥’이 유기적인 순환고리로
이어지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공존하던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크게 변모했다. 대량생산, 대
량소비, 대량유통, 대량폐기의 현대 산업사회체제는 자연계로부터 엄청난
양의 자원을 끊임없이 채취, 가공하여 생산품을 만들어 내고 각종 광고를 통
해 소비를 부추기고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켜 엄청난 폐기물들을 자연계로 쏟
아 냄으로써 자연을 파괴시켜 왔다. 그리고 오늘날 쓰레기문제는 환경문제
를 발생시키는 이러한 구조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현대인들은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기본욕구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넘어 각
종 상업광고에 현혹된 채 부풀어진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건을 구매
하고 소비한 후 폐기하고 있다. 끊임없는 소비욕구의 창출은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원동력으로 이해된 지 오래이며 과잉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
으려는 사람들과 여건과 능력만 된다면 마음껏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갈
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다 잘 살고자 노력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의 생존
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환경문제라는 사실이 현대 인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를 정확히 읽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차원에서 우리는 ‘쓰레
기제로운동’에 담긴 철학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계속)
자발적 포기는 기쁨이다
최광수 | (사)에코붓다 대표, 경상대학교 교수
지속 가능한 삶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있다. 분노가 들끓고, 자포자기가
생겨나고, 책임을 따지는 비난의 목소리가 드높다. 한국호가 표류하고 있다
는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두운 바다 밑에서 꺼져간 생명들
과 허망하게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아픔을 온 국민이 보듬고 다시는 이
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근차근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봐야 할 때이다.
많은 이들이 ‘미안하다.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가슴에 사무치는 이
단어를 앞에 두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뼈를 깎는 각오로 사회제도를 재
정비하고, 국가 기강을 단련하고, 안전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밑뿌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과 이기심,
황금만능주의를 이번 기회에 깊이 성찰하고 뒤틀려버린 우리 삶의 방향을 제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난 50 여 년 동안 우리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RPM 눈금을 붉은 색에
두고서 무한질주 해왔다. 해마다 GDP가 크게 늘어나는 게 정상이고, 몇 년
에 한 번씩 집을 늘려 이사가고, 하다못해 집집마다 살림이라도 늘어나는 게
정상인 삶을 살아 왔다. 옷장 속의 옷은 유행 따라 늘어만 가고, 신발장도 신
든 안 신든 켤레 수가 늘어나고, 가전제품은 집안 곳곳을 차지해왔다. 우리
는 모범적인 경제개발 국가로 세계로부터 인정받아왔고, 이제는 많은 나라
에서 한국을 따라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고, 우리는 한류를 통해 이를 마음
껏 뽐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장, 발전, 확대, 풍요의 결과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 이
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충돌과 탈선을 피하
고 지속가능한 주행을 하기 위해서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호의 승객 모두
가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우리 문명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악마적
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주의 사회
이며, 그것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이다". 1970년대 '레바논 사회주의 진보당'을
이끌었던 카말 줌블라트의 말이다. 어떤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인가? 다 같
이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라 다 같이 가난한 사회라는 말이다. 헐벗고 배고픈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의식주는 완전히 해결하되 인간의 욕망
을 충족시키기 위한 잉여의 물질로부터는 가난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리라.
서울 정토회관에서 만난 에코보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미래에
대해 늘 불안함을 느껴서 어떻게든 많이 모아서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고 안달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몸과 마
음이 편안해지니 삶이 단순해지고, 소비도 줄어들면서 더 많이 벌기 위해 애
쓰던 시간들을 봉사하는데 사용하면서 살게 되었어요. 전체적으로 삶의 만
족도도 올라갔구요." 에코붓다에서 진행해왔던 빈그릇 운동의 문구처럼, “비
우면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비우는 것이 박탈감이나 소외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함, 여유로움, 만족으로 이어진
다는 얘기다.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다. 수많은 성현들께서 말씀
하셨듯이 채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비우면 삶이 여유로워지면서 매순간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되고, 미래를 위한 준비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겁먹고 두려운 상
태에서 허둥대다 보면 정작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이기 때
문이다.
그러면 물질이 넘쳐나고, 모두가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누리
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함께 살면서,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
을 비우는 것이 가능할까? 에코보살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예전에도
환경운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실천을 했었지만 오염시키니까 안 버려야 하
고, 무조건 안 써야 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고 나
서는 물건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의 도움
을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과 소중한 마음으로 물건을 대
하게 되었다. 차츰 스스로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기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척 편안해졌다.” 고마움과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 하루, 내가 비우고
포기할 건 무엇일까?
참다운 문명이란 자발적 포기의 기술이다 ㅡ마하트마 간디
더 적게 벌고 더 행복하기
윤태임 | 서울 목동
특집-에코보살 심층인터뷰
김성균(이하 “김”) : 정토회와 인연이 된 계기와 언제부터 시작을 했는지 얘
기해 달라.
윤태임(이하 “윤”) : 남편이 박사 학위 받느라고 외국에 가서 한 4년 살다
가 시아버님이 많이 아프셔서 1996년도에 들어왔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데 병원 가는 길목에 ‘월간정토’ 사무실이 있었다. ‘저기가 뭐하는 덴가, 저렇
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면서 ‘월간정토’ 스티커작업을 도와주기도 했다.
거기서 ‘월간정토’ 한 권을 얻어서 ‘조금씩 달라지는 삶, 깨달음의 길로 가보
시지 않으시렵니까?’라는 책 속의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조금씩 달라
지는 삶’ 그 문구가 너무 맘에 들었다. 다시 미국으로 가기 전에 ‘깨달음의
장’을 한 번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아버님이 일요일에 돌
아가시고 그 다음 주 수요일에 ‘깨달음의 장’에 갔다. 4살 된 아이는 친정어
머니한테 맡기고, 시어머니한테는 아버님 영가를 잘 모시고 오겠다고 거짓
말을 했다. ‘깨달음의 장’에 가서 많은 것을 얻었다. 예전에 학생운동도 하고
노동운동도 조금 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사회활동을
계속 하는데 나는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빌미로 도망을 갔다. 근데 그게 죄
책감이 있었는지 군인들한테 쫓겨 계단 밑에 숨어서 철문이 닫히는 꿈을 종
종 꿨다. 그런 꿈을 꾸면 밖에 안 나갔다. 징크스가 생겨서 그런 꿈을 꾸고
나서 약간 우울증 증세도 있었고 뭔가 한 번 해 보려고 하면 잘 안 풀리는 마
음의 갑갑함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의 구분은 내가 노란 안경을 꼈기 때문에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거구나’. 이것을 정말 잊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깨달음의 장’을 다 끝내고 나와서 크게 깨달은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의 구
분은 내가 노란 안경을 꼈기 때문에 세상이 노랗
게 보이는 거구나’. 이것을 정말 잊지 말아야지’하
고 다짐을 하면서 문경 수련원의 길을 내려왔다.
그 당시 전두환, 노태우...그런 갑갑한 사회 현
실 속에서 뭘 한 번 해보려고 하는데 힘이 부치니
까 그냥 결혼을 빌미로 도망 나온 것에 대한 죄책
감.. 이런 것들이 풀어진 것 같다. 그 뒤로는 더
이상 그런 꿈을 안 꿨다. 홀가분함이 정말 좋았다. 문경에 다녀와서 시아버
지 유품을 정리하는데 금강경 책자가 나오길래 시어머니가 혼자 계시니까 그
걸 읽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케치북을 사서 금강경을 그대로 베껴서
인터뷰하고 있는 윤태임님
드렸다.
그 당시 ‘월간정토’ 사무실에 계시던 묘수법사님이 ‘월간정토’가 든 가방 하
나를 주시면서 미국에 가서 뿌려보라고 해서 일단 챙겨서 갔다. 미국에 다시
가서 달라진 점은 전에는 남편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면 뭔지 모르는 질투
심이 막 났다. ‘너는 여기 공부하러 왔지, 나는 뭐냐?’며 약간 화도 나고, 설
거지를 할 때가 되면 ‘너는 왜 설거지 안 해!’ 이런 마음이 참 많았다. ‘깨달음
의 장’에 다녀오고는 그 마음이 좀 없어졌다.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울지도 않고... 나중에 남편한테 물어보니까 내가 ‘깨달의
장’에 다녀오고 난 뒤에는 자기가 많이 편안했다고 하더라. 뭘 해줬으면 바라
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유학생 부인들을 이 동네 저 동네 끌어 모아다가 국수를 삶아주면서 ‘깨달
음의 장’에 다녀온 후 얻은 자유로움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스님 법문 테이프
를 함께 듣고, 나누기도 했다. 초발심에 느낌들을 많이 나눴다. 그리고 정말
기적 같은 일은 엄격한 부모 밑에 자란 한 분이 애기가 안 생겨서 병원에 불
임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아줌만데, 남편의 모든 행동이 불결하고 더럽다고
느껴졌다 한다. 이랬던 분이 스님 법문을 공부하면서 마음이 녹아져서 나중
에 애기를 갖게 됐다.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이 생기고 그렇게 6개월 정도 생활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거길 떠나고 난 이후에 콜럼버스 법당이 하
나 생기게 됐다. 그 6개월이 지금 돌아보면 내 생애의 큰 감동이다.
김 : 그 때가 시기적으로 언제인가?
윤 : 1996년에 ‘깨달음의 장’을 하고 한 97년? 서울에 와서 북한 동포 돕기
를 시작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정토회 활동을 한 것은 97년부터다. 2차 천일
결사도 시작했다. 새벽 기도 갔다 와서 밥해 먹고 봉사한다고 11시에 또 갔다
가 끝나고 나서 저녁 해 먹고 또 저녁에 불교대학에 갔다. 집에는 밤 10시에
왔던 것 같다. 처음엔 진짜 신심이 나서 많이 했다. 큰 딸은 그 당시 4학년이
었는데 엄마가 와서 밥 차려줄 때 까지 가만히 앉아서 밤 12시까지도 지키고
있었다. 스님 법문 공부 한창 할 때니까 큰 딸한테 참회한다고 108배를 하
면, “그래, 며칠이나 하나 보자.” 이러고 자기가 지켜봤다고 하더라.
안 되는 건 안 되는 줄 알고, 내가 할 만큼은 요만큼이다... 하면서 나아가니까
잡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는 복잡한 것들 속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김 : 정토회 식구가 된 뒤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
엇인가?
윤 : 예전에는 내가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선물을 하나 하면, 내 성
의껏 그냥 하면 되는데 내가 한 게 열이면 상대방은 스물 정도로 생각해주기
를 바라면서 머릿속이 늘 복잡했다. 그런데 그런 성격은 정토회 활동을 하면
서도 그렇게 많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화나는 일도 참 많았다. 스님이 지나
가시다가 “너는 왜 그렇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냐.” 이럴 만큼 감정의 기
복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뭔가 잘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많았다. 그러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줄 알고, 내가 할 만큼은 요만큼이다... 하면서 나아가니
까 잡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는 복잡한 것들 속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
다.
김 : 지금은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
윤 :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많았고. 남편도 다른 교수
들과 비교해서 이렇게 돼야 한다는 것이 많았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밑
바닥에 깔려 있어서 가끔씩 나타나기도 한다.
김 : 어쨌든 간에 관계는 계속 변하신 것 같다. 정토회에서 또 중요한 게 환
경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사회생활 할 때에는 어땠는지, 내가 자연
을 보는 눈이 어떻게 변했는지 말해달라.
윤 : 얼마 전까지 백화점에서 일을 했는데 ‘아...내가 아직 안 변했구나’ 느
꼈다. 그리고 예전에 사회운동의 관점이 잘못됐었구나... 좋은 것과 나쁜 것
에 대한 구별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토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하는 것
도 어떤 고집이 있어서 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서 살면서 ‘융통
성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 삶에서 부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정토회 방식의 환경 운동을 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남
편이 약간의 우울증이 왔었다. 교수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서 그만 뒀는데 우
리의 공통 목표인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생활하자’ 라는 말이 그 당시 내
가 절망에 좀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본격적으로 실험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라는 식으로 반전이 되더라.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지를 이 기회에 한 번 해보자. 절
호의 찬스다’
김 : 그 때 시기가 언제인가?
윤 : 2009년이었는데 그 때까지는 내가 매일 정토회에 상근하다시피 하다
가 정리하고, 당장은 어디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가능한 시간제로
한번 해보자 싶어서 아파트 청소, 아는 집 가게 배달... 이렇게 시간제로 조
금씩 하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그 당시 내가 주인이 되게끔 지켜낸 것
은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지를 이 기회에 한 번 해보
자. 절호의 찬스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다. ‘내가 오늘 얼마를 썼고,
우리 집 식구가 얼마를 먹고 얼마를 쓰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지켜볼 수 있는 참 좋은 시
기였다. 단대부고의 급식실에 들어가서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면서 빈그
릇이나 환경실천이 어떻게 되는지를 볼 수 있었다. 거기서 8개월 있었는데
‘빈그릇 운동’ 할 때 내가 그런 경험을 먼저 하고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라
는 생각이 간절했다. 실제로 그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으로서 ‘야, 내가 운동
을 그렇게 부족하게 했었구나’ 라는 게 정말 밥 먹는 애들의 심정을 잘 몰랐
고, 빈그릇이 안 되는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운동
적 차원에서 했던 것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거기서 일 하
면서 그 동안 살아왔던 것들도 검토해볼 수 있었다. 남편이 25년 간 꼬박꼬
박 갖다 주는 돈만 갖고 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갑자기 바뀌어버린 남편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고 마음의 갈등도 해결해야 했다.
내가 그 동안에 환경 운동을 나름 실천해왔던 것들이 나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
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그 당시 큰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중요한 시기였다. 애한테 내가
힘든 것을 티내면 안 될 것 같고, 머리가 좀 복잡해지더라. 그래서 월・화・
수요일은 법회, 목・금・토・일요일은 성당에서 ‘술 문제 있는 사람들의 모
임’ 이렇게 일주일동안 스케줄을 꽉 짜서 움직였던 그 때가 정말 치열하게 내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봤던 시기였다. 그 때가 참 좋았던 것 같고, 내가 그
동안에 환경 운동을 나름 실천해왔던 것들이 나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이번에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적응을 하는데 진짜 안
되더라. 화장을 해야 되고 염색을 해야 되고 옷은 유니폼을 입어야 되고. 그
거 하나하나를 유지하는 게 너무 벅찼다. 9개월간 일 했는데 거기는 밥을 직
원식당에서 먹는다. 거기 식당 밥을 먹다보니 너무 짜서 물이 많이 먹히고,
되게 피곤하고 좀 힘들더라. 그래서 도시락을 싸갖고 다녔는데 도시락을 먹
으니까 편안하고, 힘든 것이 많이 없어졌다. 그래서 어떤 곳에 가서 적응이
안 될 때 일단 내가 나를 스스로 지키는 것은 환경적으로, 나 혼자 개인 컵
들고 다니고, 손수건 갖고 다니고, 밥도 싸갖고 다니고. 이렇게 저렇게 내가
내 생활을 정리를 해가면서 바깥 사회에 대처하는 힘을 좀 키웠던 것 같다.
인간관계는 그렇게 많이 달라진 것 같진 않은데 어쨌든 사람에 대해서 좋
고 나쁜 분별이 없어지니 쉽게 다가가게 되고, 사람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
는 게 좀 덜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김 : 질문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겼다. 예를 들어서 학교 급식 하는데 빈
그릇이 안 되는 시스템이고, 또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데 생태적이지 않은 밥
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 알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윤 : 백화점은 일단 비닐을 무한정 공급한다. 투명한 비닐을 각 매장마다
원하는 만큼 공짜로 지급이 된다. 그러니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무조건 모든
상품을 비닐에 넣어서 준다. 그러면 고객 카트에 비닐이 50장 이상 가는 경
우도 많다. 거기서 일을 할 때 많이 걸리더라.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안 싸
주고 싶은데, 같이 지켜야 될 흐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았다. 또 백화점
은 쓰레기들을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무조건 한 투입구에다가 버린다. 밑에
층에서 아저씨들이 분리수거를 하긴 하는데 큰 것만 분리를 하지 웬만한 건
다 일반 쓰레기봉투로 나간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10명 중 8명은 밥을 남
긴다. 일단 밥을 먹으려고 할 때에는 배가 고프니까 많이 담고, 또 그걸 생각
없이 많이 남긴다. 백화점 들어가는 순간부터 ‘여기 빈그릇운동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을 했다가 결국 쫓겨났는데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많이 튄다고 보더라.
빈그릇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활용해서 업체와 학교를 대상으로 빈그릇 운동
교육을 시키고 그것으로 인해 절약되는 돈만큼 학교와 업체 반반 분담해서 교
육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교통비하고 활동비를 지원하는 일을 구청 사업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김 : 학교에선 어땠나?
윤 : 단대부고에서는 주로 설거지를 하고 뒤에 세팅하는 일이었는데 아이
들은 무조건 남긴다. 먹을 만한 방울토마토도 열 알씩 식판에다 넣어주면 다
남긴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실제 먹는 양은 정말 적다. 내가 8개월 전에 처
음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이 쓰레기양을 재어보진 않았지만 눈짐작으로는 늘
어나면 늘어났지 줄진 않았다.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급식업체는 거의 없다. 학교하고 중간업체가 있고
학생이 있는데 중간업체의 입장에서는 부모님들한테는 말을 안들을 정도로
음식이 나가고, 학교 측에서는 조금이라도 싸게 단가를 자꾸 낮추니까 업체
에서는 재료가 싼 것을 이용한다. 학생들이 2500명 정도 되는데 저녁까지도
식사가 나간다. 시스템을 뷔페식으로 바꿨는데도 거의 많이 남긴다. 토마토
같은 경우에는 먹을 만한데 일단 나갔다 온 거는 버려야 되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남긴 음식을 설거지 하려면 고속의 수도꼭지가 나와서 수압으로 드라
이클리닝을 한다. 통에 쌓인 음식쓰레기는 바로 봉투에 담겨서 나가는데 진
짜 어마어마하다. 통탄할 일이다. 거기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구청에서 우리
처럼 빈그릇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활용해서 업체와 학교를 대상으로 빈그릇
운동 교육을 시키고 그것으로 인해 절약되는 돈만큼 학교와 업체 반반 분담
해서 교육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교통비하고 활동비를 지원하는 일을 구청 사
업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경험들을 이용한 직업이 하나 생겼으면 좋
겠는데 아직 서울시에 건의하진 못했다. 나처럼 돈을 좀 벌어야하는 사람들
에게는 그런 일들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들 대부분이 돈이 없어서 나온 아줌마들
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은 남편이 버는데 부수입을 얻기 위해서 나온다고
하더라. 주로 쉬는 시간에는 혼자서 애니팡(게임), 증권 같은 것을 많이 했
는데 놀라웠다. 퇴근해서 같이 차를 타고 갈 때 대부분 다 외면을 한다. 나
는 그게 또 상처였다. 나는 사람들 만나서 빈그릇운동 얘기도 하고 할 말이
많은데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도 참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중에 책방에
가서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책을 봤는데 그 때야 이해가 됐다. 그 사람들은
뭔가 감정적 교란이 싫은 거다. 나는 일부러 교란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쑤시고 들어가야 하는 사람인데 교란이 되기 싫으니까 퇴근시간 출근시간 조
차도 자기만의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교란 받는 게 싫으니까 다른 사람
한테 웃음조차도 잘 안주는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사회 속에서 참 다들 대견
하게 살아가고, 환경적이지는 않지만 정말 식구들 다 건사해가면서 나름 잘
살아가는걸 보며 배운 점도 많았다. 동료 직원한테 “내가 어떠냐?”고 물었더
니 “언니 좀 별나. 언니 앞에 오면 밥도 남기면 안 될 것 같다” 고 했다. 어쨌
든 끝날 때 좋게 나오기는 했는데 그런 경험들을 했다.
김 : 이제 본격적으로 녹색소비에 대해서 물어보겠다. 윤태임님은 녹색소비
가 첫번째로 써 있었다. 가능한 적게 사기, 재활용품 이용하기, 에너지 덜 쓰
기 등 테마별로 좀 구체적으로 본인의 녹색소비에 대해서 말해 달라.
윤 : ‘적게 먹고 적게 쓰기’는 일단 내가 부유하게 자라지는 않아서 많이 써
본 경험이 없다. 백화점에서 일할 때 내가 열등감을 느끼려나 했는데 아니
더라. 열등감을 느끼기 보다는 인형 같이 살더라. 상품권을 가져와서 돌려
쓰고. 또 몇 푼 남겨서는 또 상품권으로 하고. 거의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종
이 돈 갖고 놀았던 그 사회더라. 정토회에 있을 때에는 안 쓰는 쪽으로 실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200만원, 250만원 주면 어떤 때는 모아서 되
레 용돈을 300만원 줬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돈을 잘 벌었지만 나는 돈을
안 쓴다는 차원에서 애들 과외도 안 시켰다. 우리 큰 애 같은 경우에는 대치
동 살면서 과외를 거의 안했다. 나중에 수학 과외만 조금 했는데 학부모들이
우리 애를 구경하러 왔다고 하더라. 그래도 그냥 저냥 해서 갈만한 데 갔고,
둘째 도 언니가 그렇게 했으니까 과외는 아예 생각도 안하고 그냥 학교만 겨
우겨우 다녔는데 그 당시에는 생활패턴이 그랬다. 무조건 안 쓰고 남는 것
은 좋은 데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남편대로 살고, 우리는 우리대
로 해서 거의 옷은 물려 입었다. 근데 그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르냐면 그 때는
내가 쓰려면 한 달에 100만원, 200만원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주눅이 안 들었다. 왜냐면 내가 안 쓸 뿐이지 쓴다면 나는 저 카트를 다 채
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내 자만이었다는 생각이 든
다. 안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 써야 되더라. 안 쓴 과정 속에서 우리 부부
도 안 쓰면서 애들을 쓰지 않게 했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체육대
회 때 하얀 티가 필요하면 우리 애들은 당연히 “엄마, 하얀 티 좀 어디서 얻
어와” 이러지 “하얀 티 사줘” 안한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재활용 물건을 보
죠. 뭐 주워올 게 없나. 미국에서 지낼 때도 늘 주웠다. 미국은 차만 한 대 끌
고 나가면 살림살이를 다 주울 수 있다. 미국은 지하창고 개방해서 가라지세
일 한다. 그리고 벼룩시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든
생각은 기본적으로 많이 사서 많이 버리는 거였다. 그래서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이 집이 창문이 많다. 창문이 많아서 좋다고 왔는데 겨울에는 너무 춥다.
12월 9일 처음 여기 왔는데 불을 때니까 너무 따끈따끈 했다. 연립에서 살
때에는 따끈따끈한 맛이 없고 미적지근했었다. 여기는 완전 한증막처럼 따
끈따끈해서 세게 틀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달 나온 가스 값이 한 32만원. 그런
데 여기는 워낙 춥기 때문에 그냥 온도를 낮춰놔도 보일러를 유지하기 위해
서 가스가 들어간다고 했다. 기본으로 나오는 게 적어도 17만원, 18만 원 정
도 나온다고 했다. 돈은 없는데 이렇게 돈이 나가면 큰일이지. 우리 집에서
지출 비중이 가장 큰 것이 보험료, 세 명의 핸드폰 비.그리고 가스비였는데
다른 건 다 줄였는데 가스 비는 어떻게 줄일까 고민을 했다. 한 해는 춥게 살
아봤고, 돈도 많이 내봤고. 여름철부터 어떻게 줄일까를 계속 고민을 했는데
창문 위쪽에 커튼을 박았다. 비닐을 치고 그 위에 헝겊을 댔다. 이렇게 해보
니 가스비가 32만원에서 4만원까지 줄었다.
친정 엄마는 그 얘기 듣고 울더라. 마루는 물
론 거의 냉방이다. 천 쪼가리를 얻어다 이어
서 바닥을 전면 다 깔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있는 게 온수 보일러다. 1인용짜리가 하나 있
고, 와트 수가 40와트밖에 안 되는 제일 낮
은 거 하나를 구비해서 자고, 나는 실험한다
화분에서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 하
면서 화초를 동시에 키운다.
고 퇴근하고 오면 빨간색 물주머니를 끓여놓고 신체부위 어디에다 끼고 자면
따뜻할까 실험하고 잔다. 나름 실험이랍시고 호통을 쳐가면서 하고 남편은
몸도 안 좋고, 너무 차가우면 안 좋을 것 같아서 전자파 없는 온수 매트를 하
나 샀다. 남편은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을 치유하는데 술 문
제가 좀 있다. 그래서 예전에 술을 먹으면 소주 9병~10병까지 혼자서 먹었
다. 죽으려고 먹는 거지. 그러면 눈이 완전히 풀려버리더라. 사람이 거의 맛
이 가버리더라. 남편이 워낙 그래서 일단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가 2주 정
도 있다 나왔다. 그런 상태까지 갔었는데, 제일 고마운 것은 대치동 연립주
택은 햇빛이 굉장히 조금 들어와서 낮에도 거의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두웠는
데 이 집에 들어와서는 햇볕을 받고는 엄청 자더라. 늘어지는 고양이처럼 엄
청 많이 자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 남편은 학교 쪽 관
련된 일은 일절 안하고 이제 논문을 쓰면서 자기 나름대로 일을 하겠다고 한
다. 어찌됐든 그런 과정에서 마누라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거지. 그래
서 얼마나 이혼하자고 생난리를 떠는지... 사람 마음이 멀어지니까 옛날에
부부였던 게 어떤 거였는지도 몰라. 완전 공포의 대상이야. 말 한 마디, 행
동 하나부터 나를 어떻게 하면 골탕 먹일까 그러는데 심지어는 회 뜰 때, 물
고기가 된 것 같더라. 회 한 포 한 포 뜰 때 그 사람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겠
나... 그래서 사람이 꼭 두드려 패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화가 전달되고, 나에 대한 미움이 막 배어나올 때 그걸 받아내는 건 매
일매일 수행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가난했기 때
문에 그것도 짧은 시기에 회복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
가 상담사를 찾아가서 남편들 술 문제가 있는 아줌마들 모임에 나갔다. 성당
모임이었는데 그 분들을 만나서 1년 반 정도를 교육 받았다. 처음 갔을 때 거
기 모인 여섯 명의 아줌마들의 80프로가 남편을 알코올 중독 병원에 보냈더
라. 한 열 댓 번 보낸 아줌마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었다. 근데 그 아줌마들은
너무 예쁜 거야. 옷도 예쁘게 입고 화장도 하고 얼굴이 발랄한데 나만 제일
후줄근해서 깜짝 놀랐다.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나는 조금씩 수행을 하고
매일 아침마다 절을 하고 남편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돌리고 했기 때문에일
년 뒤, 나는 좀 편안해졌는데 그 분들은 계속 공부를 해야 되는 상태로 남아
있더라. 병원에 갔다가 집에 다시 오면 또 몇 달 있다가 남편을 병원에 보내
는 거지. ‘저 사람이 나를 때릴 것이다, 저 사람이 나가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다’라는 공포감이 한 달, 석 달 정도 되면 남편이 뭘 안 해도 막 소설을 써서
집어넣게 만들더라. 이게 뭐지?, 뭐지? 하면서 아...수행을 해야겠구나 생각
했다.
현대사회에서 마음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약을 먹고 좋은 기관에서 요
양을 하는 게 아니라 없으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을 나누는 게 훨씬 더 빠른
치유법이 아닌가 한다
그때 참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외식도
할 수 없었고 쇼핑을 할 수도 없었다. 세끼 모두 집 밥을 먹어야 했다. 예전
엔 외식 많이 했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본인 몸이 좋아지고, 애는 학교
갈 때 돼서 학교 가고 나는 또 이렇게 되고. 각자가 자기 생활의 영역을 잘
지켜나갈 수 있었다. 돈이 있는 아줌마들은 알코올 중독 병원에 보내려면 나
라 보조 받아도 매달 최소한 8~90은 있어야 된다. 좀 형편 좋은 데 가려면
200만 원 정도 든다. 나는 돈이 없어서 보낼 수 없었지. 돈이 없기 때문에 오
히려 우리한테 득이 된 게 있었다.
남편이 나에 대한 미운 마음이 조금씩 녹아나면서 엄청 추운 어느 날, 온
수 매트를 옆으로 대주더라. ‘오늘은 여기 와서 자라’ 이렇게. 그래서 그 날 3
년 만에 남편 옆에서 처음 잤다. 이제는 거의 예전의 남편으로 복귀를 했는
데 아직도 술 먹으면 미운 마음이 드는지 ‘니가 그 때 나한테 그랬지..’얘기
는 하지만 어쨌든 멀어진 사람 마음 돌릴 수 있는 길은 돈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적게 쓰면서 접촉을 하면서 녹아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겐 그
게 큰 교훈인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마음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약
을 먹고 좋은 기관에서 요양을 하는 게 아니라 없으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
감을 나누는 게 훨씬 더 빠른 치유법이 아닌가 한다. 술병은 죽어야 해결된
다고 다 그랬다. 이게 고쳐지는 병이 아니고 다 죽어야 되는 병이라고 했는
데, 남편이 덜 했기도 했겠지만 특별히 약 먹은 것도 없고 그냥 이렇게 살면
서 나는 계속 보는 거지.‘저 사람 마음이 어떻게 돌아오나’ 하고. 특히 알코올
중독자들은 느낌이 냉하다. 새한빛병원에서 법륜스님 법문 테이프를 틀어주
고 나누기 하는 걸 잠깐 했었는데, 4~50명 술 문제 있는 아저씨들이 모여서
법문 듣고 나누기 하고 했다. 그런데 다들 느낌이 참 냉하다. 외로움이라던
지 고독감이 사무친 느낌이랄까. 하여튼 지내면서 보니 이렇게 없이 시골 가
서 살고 하는 게 치료하는데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 : 물품 재활용하기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윤 : 나는 무슨 물건을 보던지 ‘이것으로 뭘 할까?’ 고민을 한다. 그게 참
재미있다. 백화점에서 일하기 전에 유기농 매장에서 잠깐 일을 했었는데 유
기농 매장에서 일을 하면 상품이 들어있는 박스라든지 진짜 쓸 만한 것들도
많은데 일단은 분류해서 버려야 했다. 그래서 참 연구를 많이 했다. 박스가
오면 투명 테이프로 한번 되감아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재활용해서 쓰기도 했
다. 같이 일한 친구들을 좀 번거롭게 했었는데 가장 크게 바꾸었던 건 비닐
대신 보자기를 사용한 것이다. 아무리 시장바구니를 갖고 오라고 해도 안 가
져 왔다. 손님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사장님하고 잘 얘기를 해서 했는데 아
는 손님들 중에 ‘집에 보자기 있으면 저희 주실래요?’ 해서 보자기를 가지고
묶었다. 양쪽에 끈을 묶어서 이효재 주머니같이 했다. 거의 2년 일하고 나올
때는 대부분 다 비닐을 안 쓰고 보자기로만 포장해서 줬다.
하여튼 재활용은 먼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직도
지나가다 쓸 만한 게 있으면 다 주워온다. 우리 집에 있는 건 거의 100% 다
주워온 것들이다. 하나씩 하나씩 주워 오다보니 지금은 거의 세팅이 웬만큼
됐다. 화초도 거의 다 버리는데 가져다가 키우면 살아난다.그렇게 재활용을
하고 있다.
김 : 요즘 ‘자발적 가난’, ‘청빈’ 이런 얘기가 사회적으로 되게 많다. 그런 부
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 : 책이 나왔더라. 「더 적게 벌고 더 행복하기」그 책을 읽어봤는데 만약
에 내가 새로 직장을 구한다면 생활을 하는데 최소한 얼마가 있으면 가능한
지 생각부터 해봤다. 아주 최소한으로 잡으면 보험료, 통신비, 난방비, 식비
해서 한 120만원 들어가더라. 그래서 직장 잡을 때 한 120만 원 이상만 잡으
면 된다. 120만원을 받으려면 주당 한 40시간 정도 하면 된다. 주 5일 근무
하면 가능하다. 이렇게 사회 시스템에 내가 맞춘다.그러다 조금 더 돈이 필
요하다 싶으면, 지난번은 하루 10시간해서 180만 원 받았다. 180 받으니까
정말 넉넉하다. 법당에도 돈을 좀 내야 하고...어쨌든 사회적인 시스템하고
내 시스템하고 맞추면서 한다. 남편 상태를 체크해야 해서 너무 돈 버는 것
에만 빠져있으면 안되고 그런 걸 좀 배려해가면서 일하는 시간을 잡고 있다.
분리와 재활용이 철저한 모습
낡은 부채도 간단히 새 것으로
어쨌든 한 120만 원 정도면 우리 집은 그런
대로 살 수 있다. 이렇게 잡아놓으니까 편안
하다. 막연히 ‘내가 얼마가 있어야 되는데 당
장 수중에 돈이 없다’가 아니라 ‘어느 정도 줄
이면 되는구나’하고. 초반에는 한 80만 원 정
도 갖고 썼는데 좀 쪼들렸다. 교회 다니는 사
람이 쌀도 주고 해서 어떻게 넘어가고 했는
데 그러면서 느낀 것은 ‘아, 다 살아지는 거
구나!’. 대신에 폼 잡을 수 있는 건 없는 거
지. 누구에게 밥을 사준다든지, 폼 나게 기부
를 한다든지.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삼보수호비를 만 원
으로 올렸다. 그렇게 내 생활을 조금씩 업그
레이드 시켜가면서 사는 것도 재미있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 “너는 이제 용돈 없다. 네가 벌어서 해라. 그리고
일단 대학 갔으니까 등륵금은 알아서 하다가 안 되면 우리는 문경으로 간다”
이렇게 세뇌 교육을 시켰는데 지금까지 2년 동안 딸아이가 장학금도 다 받았
다.그래서 한 푼도 안 들었다. 그리고 용돈은 지인의 한의원에서 주말에 일
하면서 번다. 남편이 말을 안 해도 큰 딸처럼 작은 딸도 본인이 시켜야하는
데 못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는데 저렇게 생활을 잘해놓으니까 아빠도 마음
이 편안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 보지 말고 그냥 각자 자리에서 잘
살자, 그리고 아빠가 건강해지면 그게 제일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그
냥 편안하고 각자가 편안하다 보니까 지금은 그냥 잘 산다.
하여튼 적게 먹고 적게 쓰기에 내가 정말 얼마까지 쓸 수 있느냐를 솔직하
게 체크를 해 놓으면 편안해 질 수 있었다. 돈이 적기 때문에 당장 사고 싶
은 것을 못사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거는 요번에 못 사면 석 달 후에 산다’ 이
렇게 되기 때문에 크게 부족한 건 없다. 아직까지도 냉장고, TV 잘 버텨주고
있고 남편 몸도 병원에 안간 상태에서 그냥 잘 버티고 있고, 그래서 그런 것
들이 서로가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구하는 생활로 바뀌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우리가 아침마다 공부하면서 ‘어
떻게 그게 가능하게 되지?’ 하는 관점으로 바뀌었다는 것
최 : 돌이켜보면 이 에코붓다 프로젝트를 빈그릇운동 하고있던 시점에서 구
상했던 것 같다. 그 때 윤태임님, 김월금님 강의 사례를 들으면서 저분들의
삶이야 말고 진짜 앞으로 모델이 될 텐데....없어서 안사는 게 아니라 있어도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가난하게 사는 이런 삶이야말로 보편화 되어야 하
지 않느냐 이게 현인들이 한 이야기인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렇게 실천하시는 분 만나서 인터뷰도 해보고 싶
고 정리를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게 기억이 난다. 궁금한 것이 몇 가
지 있는데, 지금 윤태임님 입장에서는 쓸래야 쓸 수 없는 돈이고 정말 최소한
의 필요한 만큼만 벌어서 사시는 분인데 일상적으로 소비가 필요한 때, 그러
니까 사람을 만날 때. 특히 가족이나 친척을 만났을 때최소한 밥도 못 사주게
되는데 그러실 때 약간의 부담감이나 보시를 못했을 때 심적으로 어땠을까 하
는 궁금함이 든다.
윤 : 연구하는 생활로 바뀌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우리가 아침마다 공부
하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게 되지?’ 하면서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관점으로
바뀌었다는 것. 집안에 돈 좀 써야 될 때가 가끔씩 있다. 그 때 한 번 돈이 왕
창 나가면 내가 막 휘청거린다. 조카 둘이 졸업을 하니까 못해도 10만원 씩
두 번 주고 나니까 그 다음 달은 막 힘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통장에서 십만 원하고 이만 원씩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최 : 누군가가 윤태임님에게 인생관이나 가치관은 뭐냐고 물어본다면 뭐라
고 답을 줄 것인가?
윤 : 아직은 확고하지가 않지만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뭘까...나는 사회적
기업에도 들어가고 싶고 협동조합에도 들어가고 싶고 얼마 전에는 공유경제
에 대해 들어보니까 사업 아이디어가 없더라. 이걸 갖다가 이윤을 남기고 이
렇게 하는 거는 없더라. 그래서 ‘내 인생관은 뭐였지?’ 라고 생각을 하게 됐
는데, 별로 없었다. 아침에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좀 주어지면 좋겠고, 한
달에 한 번 도반들과 자자 포살하는 정도. 매 주 법회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
고, 정말 이렇게 그냥 간소해지는 것. 뭐 특별한 인생관은 없고, 조금 더 한
다면 이번 주에 지리산 수련원 깨장 바라지를 신청했는데 거기서도 내가 뭘
한 번 실험해 보고 싶으냐면 ‘내가 과연 바라지를 할 수 있는 민첩함이 남아
있을까?’이다. 내가 백화점에서 제일 떨어졌던 게 뭐냐면 나이를 먹었더라
고. 뭘 하면 빨리 빨리 안 되고. ‘아, 여기에 있는 것이 내 욕심이구나’. 왜냐
면 화장을 하고 날 가꾸고 이러는 것도 하던 버릇이 있어야 되는 건데 그래
서 욕심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해서 그만두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그만
뒀다. 이번에 공동체에서 살 때에도 ‘내가 과연 쫓아갈 수 있을까?’ 이것부터
또 한 번 실험을 해봐야겠다. 지난번에 저녁 반에서 회의를 했는데 그 때 무
슨 일이 있었냐면 잠시 봉사활동을 쉬다가 다시 들어온 봉사자들 중에는 ‘정
토회가 나를 좀 이해 못한다’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근데 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토회가 당신을 맞춰줘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거
기에 맞춰야 한다’고. 정토회 안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자기가 힘을 기르
는 거라고. 그래서 인생관은 그냥 그런 정도의 힘을 키워서 같이 살 수 있으
면 좋겠다. 그런 것 말고는 인생관은 별로 없다.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화합시키고, 둘이서 싸우면 한 사람 불러다가 맛있
는 거 사주고. 이런저런 얘기하고 이러면서 계속 나 스스로 저 사람들하고 내
가 소통이 되고 있구나
최 : 끝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 에코보살 프로젝트도 우리 삶의 모델
을 찾아서 정리를 해보자고 하는 건데, 일반시민들한테 우리가 어떻게 다가가
면 좋을까? 그렇다고 수행을 해라,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윤 : 나도 고민이다. 내가 백화점에 뭘 하려고 왔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 문제 말고. 거기에 있는 언니들하고 지내면서 뭔가 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면 난 잘나 보이고 싶은 거야. ‘난 너희들하고 다르거든’ 이 생각이 자꾸
드는 거야. 그러면 내가 본격적으로 뭘 추구하고 싶지. 이럴 때 인격적으로
좀 존경을 받고 싶어 하더라. 그래서 일단은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화합
시키고, 둘이서 싸우면 한 사람 불러다가 맛있는 거 사주고. 이런저런 얘기
하고 이러면서 계속 나 스스로 저 사람들하고 내가 소통이 되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나중엔 자기네 집 얘기 다 하고 자기 남편이 뭘 했단 얘기 다 하
고 이렇게 되긴 되더라. 그런 것들을 계속 실험을 해봤는데 인격적으로 그런
모델?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어떤 식의 모델들이 만들어지듯이 그런 모델들
이 되는 거?
김 :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말하는 것 같다.
윤 : 각자가 그런 인격체가 되는 거지. 그러고 아까 운동의 관점을 잘못 잡
았다고 얘기했던 게 뭐냐면 내가 너무 터트리는 식의 운동을 했었다. 노동운
동도 그렇고, 학생운동도 그렇고. 옆에 있는 언니들한테 백 번 이상 스님 법
문을 보내줘도 답변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대학교 동창들에게 보냈을 때
에도 거기서 내가 뭘 느꼈냐면, SNS가 다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공감 없이
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구나’ 나는 옛날에 공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먹으로 쥐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부터 해보고 나랑 비슷한 사람이 모여들
때 같이 나누어보고. 그럴 때 조금 확산을 시켜보고. 그렇게 보면 백화점 언
니들한테 배워서 장아찌, 오이지도 담갔고 매실 장아찌도 많이 담갔다. 옛날
에는 그런 거 몰랐다. 그런데 진짜 그 분들은 일을 하면서도 매실장아찌 담
그고 오만가지 부모시대부터 해왔던 거 다 해먹고 있더라. 산과 들로 나물들
을 따러 다니며 훌륭하게 자기 삶을 잘 끌어가고 있더라. 그래서 아까 말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없다’가 아니라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아’ 그런데 거기
에 이름을 붙이고, 운동을 만들고 이러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두북, 봉화, 지리산에 청정마을을 하나 만들어서 그 곳에 사람들이 와서 보
고 나가고. 지내면서 쓰레기제로와 전력 줄이기도 해보고.그런 걸 하나 해보
면 어떨까 싶다.
백화점 언니랑 얘기가 되면 한 명씩 데리고 법문 들으러 갔다. 그러면 자랑
할 만한 것은 결국 ‘저 사람이 우리 스님이다’가 아니라그 사람이 나를 볼 테
고 법륜스님 제자라면 먹는 거나 뭘 잘 쓰는 지도 볼 테고, 회관에서 우리는
이렇게 한다고 보여줄 게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토회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예전에합정동에 빈그릇 식당 있었
는데 없어졌다. 정토회에서 그걸 다시 한 번 해보면 어떨까. 덕소에서 신도
분이 농사를 오천 평을 지으신다. 그런데 쓸 데가 없는 거야. 그걸 계속해서
하시긴 하는 것 같은데 그 싸게라는 것도 거사님으로서는 어렵잖아. 그리고
회관에서 뭘 팔고 하는 것도 안 되고. 그래서 거기를 조금 더 세팅해서 농사
를 짓게 하고, 보살들 중에 없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런 사람들이 거길 가서
농사를 짓고 돈은 안 받지만 농산물도 갖다 먹고, 식당을 개업해서 낮에 1시
부터 2시까지는 빈그릇 식당 해서 돈 내고 먹게 하고 그 옆에는 재활용 매장
하나 하고 공정무역 카페 하나 하고 이런 센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사회
적 기업이라든지 협동조합이라든지 정토회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모임이 있
다니까 한 번 거기에 들어가서 내가 할 형편은 못되지만 세상 흐름을 구경이
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최 : 최근에 정토회 내에 계속 사람이 늘고 있다. 지역 법당도 늘고. 그래서
지역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어떤 분의 제안을 예로 들면
‘한 곳에 모여서 하는 공동체는 모델이 만들어져야 되지만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법당에 와서 그냥 자원 봉사만 하는데 공동체로서의 삶도 꾸려볼
수 있게끔 실현도 해보자’ 이런 제안도 있다. 예를 들면 카쉐어링사업이나 공
동구매도 할 수 있다.그런 것도 사업 구상으로, 환경 사업으로 정토회에서 지
역단위로 시범사업으로 그 분들끼리 네트워크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윤 :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서도 교육을 엄청 시키더라. 신고해야 되고 구
직활동을 위해서 상담, 심리검사부터 해서.. 그래서 이번에 한 번 해볼 참이
다. 나한테 적합한 직업이 뭘까.. 그런 것도 있고 구청이나 이런데도 일자리
센터,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이것을 어떻게 잘 연결을 하면
좋겠다. 이 집이 워낙 추우니까나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번 겨울에는 난로
를 놓아볼까, 이런 생각을 해서 보니까 마포 쪽에는 난로를 만들어서 보급하
는 공동체가 있더라. 살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여러 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그게 좀 더 발전하면 사업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활동을 너무 안에서만 하지 말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도입을
하고. 공유경제도 얼마나 멋있나!. 집에서 남는 책, 남편 이사 올 때 경제학
책이 최소한 몇 백 권은 버려야했다. 집이 좁으니까. 근데 그건 또 일반 도서
하고는 다르지 않나. 그래서 아름다운 가게로 보냈더니 그쪽은 쓸데가 있다
한다. 그런 책들을 마을의 어느 공간을 마련해서 같이 다 공유하는 일을 한
다고 한다. 여하튼 그렇게 할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다.
김 : 이제까지 질문에 답변해 주셔서 고맙다.
내가 맑아지면 주변도 맑아진다
김영주 | 부산
특집-에코보살 심층인터뷰
김성균(이하 “김”) : 정토회는 언제 알게 되었나?
김영주(이하 “주”) : 2006년 봄 불대부터니까 인연이 된지는 한 7년 됐다.
김 : 정토회와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주 : 스님의 ‘참회’라는 테이프를 들었는데 아주 생소했다. 절에 다니긴 했
어도 법문이 파격적으로 들렸다. 그 후 울산 법당에 테이프를 사러 갔다가
마침 스님의 직강이 있어 법문을 들었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개한테 목걸이를 걸고 개를 끌고 다니면 내가 주인이고 끌려 다니
면 개가 주인이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늘 이렇게 괴로운 삶을 살겠구나’ 하
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줄곧 법당에 나갔다. 정말 쉬지 않고 불대 공부
하고 경전반 공부를 했다. 그리고 공양간 돕는 일을 바로 시작했다. 내가 전
에 다녔던 절과 다르게 무한정 베풀 수 있는 곳이라 좋았다. 공양 반찬을 집
에서 해서 갖다 나르고 하는 것이 너무 신났다. 그러면서 7년이 됐는데, 지금
은 집전까지 할 수 있는 인연이 주어져서 참 감사하게 잘 다니고 있다.
김 : 술 때문에 남편분과 힘들었
다고 했는데 정토회 만나기 이전
생활과 최근의 삶을 비교하면 어
떤가?
주 : 정토회 만나기 이전은 지
옥인데 지금은 천당이다. 정말 지
옥과 천당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남편이 술을 먹고 주사를
부리면 그땐 지옥이고 또 괜찮아지면 천당에 갔다가...
이제는 남편이 지옥으로 갖다 놓아도 천당으로 빨리 올 수 있는 방법이 있
더라. 요즘에는 내가 공부를 하니까 남편도 공부를 한다. 법당은 안다니는데
집에서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하고 술도 줄였다. 남편에게 ‘해주십시오’ 라고
안했는데도 자기 스스로 하는걸 보면 이게 스님 법문인 ‘내가 맑아지면 주변
이 맑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최광수(이하 “최”) : 환경 실천 부분에서 문제점이 기억나는가?
주 : 처음 정토회에 왔을 때 철저하게 하더라. 참 낯설었다. 그렇게 살지
않다가 여기오니까 하나에서 열까지 제재가 너무 많아 힘들더라. 집에 가서
는 실천이 잘 안 되지만 법당에서는 철저히 하고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되니
인터뷰 하고 있는 김영주님
나중에는 거부감 없이 하게 되더라.
김 : 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나?
주 : 여기 와서 얼마 안됐을 때 스님의 환경에 대한 법문을 들었다. “환경
실천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자연을 훼손한 만큼 자연이 우리한테 큰 재앙을
줄 것이다. 인간이 자연한테 할 수 있는 보답은 자연보호밖에 없다.”고 하셨
다. 한 해 나오는 쓰레기 양으로 북한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충
격을 받았다. 법당에서 하는 만큼 하려고 애를 쓰는데 집에서는 그게 쉽지
않더라. 워낙 제사도 많고 해서. 그러나 꾸준히 하려고 노력을 했다. 이제는
집에서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김 : 그럼 그전에는 어떻게 했나?
주 : 그냥 자연스럽게 버렸다. 철저하게는 안했지만 절약을 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은 있었다. 한 7년 쯤 되니까 좀 더 달라졌다.
김 : 뭐가 더 달라졌나?
주 : 첫째는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집이 주택이라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 묻는다. 마당이 넓어서 음식물 쓰레기 모아두면 남편이 곳곳
에 잘 묻는다. 그러니까 올해는 호박이 아주 잘 됐다. 마당에 지렁이가 굉장
히 많다.
김 : 지렁이를 가져다 놓은 건가?
주 : 아니다. 자연산 지렁이다. 음식이 있으니깐 계속 생기더라. 과일 나무
도 마당에 좀 있다. 음식을 자꾸 묻어주니까 과일이 굉장히 많이 열린다.
현희련(이하 “현”) : 세상에서 제일 좋은 유기질 비료니까 지렁이 분변토 때
문에 과실이 잘 되는 것 같다.
주 : 과실이 달다.
최 : 시장은 자주 보나?
주 : 요즘 비싸서 잘 사러 가지 않는다. 있는 거 먹는다.
김 : 대형마트는 주기적으로 가나?
주 : 잘 안 간다. 백화점은 아예 가지 않는다.
최 :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고 있나?
주 : 분리수거를 철저하게는 못하고 있다. 태그를 떼어낸다든지 이렇게는
안하는데 비닐 모아서 장사하는 할머니들 갖다 주면 좋아한다.
최 : 세탁은 어떻게 하나? 빨래를 모아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돌리나? 아
니면 매일 하나?
주 : 세제 쓰지 않으려고 빨래비누로 손빨래해서 세탁기로 돌린다. 팔이
안 좋으니깐 헹구는 게 힘들어서 씻어서 헹굼은 세탁기에 한다.
최 : 수도요금은 얼마나 나오나?
주 : 7천원 정도 나온다.
현 : 물 진짜 안 쓰는 것 같다. 물은 재활용하는가?
주 : 씻고 걸레 빨고 한 건 마당에 나무가 있으니까 뿌려준다.
현 : 정토회 만나서 환경 실천하면서 아끼게 되고, 덜 쓰게 되면서 어느 정
도 절약이 되는지?
주 : 예전에 100만원 쓴다고 치면 지금은 한 30-50만원.
김 : 전체 총량으로 봤을 때 그 정도 줄여 쓴다는 뜻인가?
주 : 비율이 그렇다는 말이다. 쓸 일이 별로 없다. 애들이 없으니까 외식을
전혀 안 해서 외식비 드는 게 없다. 과일, 생선, 육류도 잘 안 먹게 된다. 돈
을 아끼려고 하니까 엄청나게 아껴지더라.
다른 사람들은 쓰면 좋다고 하지만 나는 죄를 짓는 것 같다. 내가 올해 환
갑인데 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게 중심이 잡히는 것 같다. 돈을 많이 쓰지
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회가 되는 부분이 많다. 북한에서는 저렇게 죽어가는
아이들도 있는데 지금은 돈 쓰는 사람이 오히려 좀 안쓰럽다. 너무 몰라서
저렇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 잘 썼으면 좋겠는데
주 : 잘 썼으면 정말 좋겠는데, 안이한 눈으로 날 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모임을 다 끊고 한 두 개 밖에 없다.
김 :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모임을 끊은 사람이 많다. 시간도 없고.
주 :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많이 든다. 예전엔 재미있었는데 이
젠 여기가 더 재미있다.
김 :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주 : 첫째, 내가 필요에 의해 쓰인다는 것이다. 찜질방 가고 어디 가고 그
게 재미있다고 하지만 여기에 오면 내가 쓰일 곳이 있다. 거기 가서 돈 들여
쓰는 것 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
다 보니 가장 보람된 것은 내가 남한테 도움이 되는 거다. 그렇게 되니 나머
지들이 미미해지고 재미가 없다. 오늘도 모임이 있는데 문학회 모임이다. 내
가 숙제 당번인데도 거기 안가고 그냥 벌금을 낸다. 이제 재미가 없고 의미
도 없어졌다.
최 : 그렇게 사회생활을 좀 정리하고 이렇게 봉사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는데
그러다보면 보시를 많이 할 것 같은데 남편분이 반대하거나 하지 않나?
주 : 남편은 내가 하는 일에 아무런 터치를 안 한다. 생활은 본래부터 내가
꾸려왔으니까 알아서 쓴다. 옛날부터 터치를 안했다.
최 : 매일 이렇게 출근하고 봉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노터치인가?
주 : 남편도 이 쪽 공부를 좀 하니까 이해를 한다. 내가 나가면 오히려 남
편이 더 좋아한다. 어떨 때는 내가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 참선에 들려고 하
는데 방해된다고 싫어한다. 내가 나가줘서 참 고맙다는 날도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니까.
최 : 서로서로 복 받은 거다.
주 :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든 것도 참 많았지만 이게 젤 행복하다. 각자 자
기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제일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최 : 남편분이 술은 좀 많이 줄었나?
주 : 술을 아예 끊었다. 서서히 안마시더니 얼마 전에는 참선 공부를 해보
니 이게 마장이라면서 술 담배 완전히 끊어버렸다. 서너 달 됐다.
최 : 두 사람이 환갑 되어서 금슬도 좋아지고 술도 딱 끊고, 노후 초입에
확 바뀌어서 자녀들이 뭐라고 하나?
주 : 집안 분위기가 편안하니까 우리 애들이 참 좋아한다.
현 : 정토회 와서 환경실천을 너무 철저하게 해서 처음에 조금 힘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제일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나?
주 : 공양간 일을 하니까 쓰레
기를 (저울에)달아서 재야하고 기
록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
고 수박 제일 바깥 껍질만 버리고
속껍질까지 다 먹어야 한다. 수박
의 흰 부분까지 볶기도 하고, 졸
여도 보고 채소로 무쳐도 보고 온
갖 것을 다해도 쓰레기가 나올 때
가 많이 힘들었다.
최 : 그렇게 오자마자 철저하게 실천해야 했을 때 주변 봉사자들과 부딪힘
은 없었나? ‘왜 이걸 해야 하냐’ 라든지.
주 : 정토회는 참 이상한 게 누군가 속으로는 분별이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드러내놓고 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더라. 여기는 이렇게 하나보다 하고 따
라하지, 그렇게 분별을 많이 안 내더라.
인터뷰 하고 있는 김영주님
현 : 요즘 울산 법당 공양간은 어떤가?
주 : 공양담당이 따로 있고 보조 역할을 한다. 굉장히 철저하게 하더라. 한
사람당 몇 그램 정해 놓고.
현 : 조리할 때 그렇게 계획을 세워서 하나?
주 : 남는 것 보다 적은 게 낫다고 감자 5개 12인분으로 계산하고. 아주 철
저하게 해서 놀랬다.
현 : 발우 공양할 때 그렇게 한다. 감자 하나 가지고 5명이 먹는다고 계산해
서 40명이면 딱 8개만 요리를 한다. 왜냐하면 반찬마다 모두 1인분을 계산하
면 많아져 버리니까 하나 가지고 보통 몇 쪽을 먹느냐 계산을 해서 그걸 가지
고 사람 수를 계산한다. 그렇게 안 하면 남는다.
주 : 거의 남는 게 별로 없더라. 반찬 딱 두 가지 김치 한 가지.
최 : 무게를 재서 한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 왜냐면 정토회 법당들이 막 늘
어나고 있는데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이런 게 표준화 되어 있으면 음식 쓰레기
가 나오지 않는다.
주 : 아까도 칭찬했지만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김 : 환경실천 대중화를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
주 : 정토회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자를 만들어서 우편함에라도 꽂아
놓아보면 좋겠다. 불교 TV에서도 환경 실천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 홍보가
너무 안 되고 있다. 전부 몰라서 다 버린다.
최 : 정토회 오기 전부터 근검절약을 했는데, 후배 초심자들에게 충고나 제
안이 있다면?
주 : 주위사람들을 보면 ‘기부를 하자’ 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단돈 만원이
라도 기부하면 즐거울 것이라며 아이들한테도 하도록 했다. 기부하는 돈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 내가 만족을 얻기 위해 쓰는 것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쓰는 것이 좋다.
현 : 초심자에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 생명을 살리는 삶에 동참을
해 보면 저절로 절약은 따라온다는 뜻인 것 같다.
최 : 인터뷰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에코붓다 지부 환경의 달 캠페인
편집부
특집 - 환경의 달 소식
남편이 야간 봄 불대 다니면서 동기 도반님들이랑 식
당에 가서 빈그릇하는것을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중국
집, 해장국집에서 빈그릇 하는 거 보고 쉬운 게 아닐텐
데 잘 하고 다녀요. 설거지 해주면서 집에서도 빈그릇
잘한다고 칭찬 받았네요. 큰애, 작은애들 도시락과 자
기들 그릇을 보면 항상 깨끗합니다.
김인숙님은 아들의 야식을 사러 밤 10시 넘어
통을 들고 김밥과 비빔만두를 사왔어요. 일회용
줄이기 실천^^
장사하시는 분이 잠시 당황하셨다네요.
경전반 수업후 개인컵 가져오신 분들께 한잔!!
우와 맛나다! 손수건 받침해서 마시니 음 ~~스
멜!!!
환경실천 2주차 자기컵 쓰기. 예쁜 주전자에 산미나리 씨앗차를
대접했어요. 향기가 너무 좋네요^^
환경실천 첫째주-빈그릇운동(쓰레기제로운동). 오늘 주간 불대생
들은 깨끗이 닦아먹었어요. 마음까지 깨끗해지네요.
북삼법회 야간 불대생이 떡볶
기 간식을 준비하셨어요. 요플
레통을 재활용해오셨네요
환경실천은 냉장고 청소부터.
냉장고를 청소하고 남은 음식
먹기
그릇 닦아먹고 계신분이 불교대 햇 도반님이세
요.
달서법당에서 수행법회와 화요불교대에서 빈그릇 실천내용입니다.
빈그릇실천 환경주간에 불대 경전반 수요
법회에서 공지를 하고 4월 16일 수요법회
를 마치고 다 같이 실천해 보았다.
공양후 깨끗하게 닦아먹은 공양접시를 보
고 환경실천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
니구나라고 느끼며 환한 얼굴로 한컷~~
법당에서 뒷물수건 만들기를 하고 계신 분들은
불교대생들이십니다.
환경지킴이는 이웃이 아닌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일입니다.^^
가정에서의 실천은 떡볶이 사먹을 때 그릇 가져
가기.
환경주간 캠페인을 맞이하여 불대생들이 공양시간에 모두 개
인컵과 손수건을 전시하듯 놔두고 점잖이 포즈를 취해 보았습
니다. 황순옥님은 외식할 때 작은 통을 가지고 다니며 밥을 미
리 덜어 보관했다고 합니다.
모둠 법회때 자기컵과 손수건 가져가기를 실천
해보았어요.
우리 모둠은 카페에서 법회를 열었는데.....
모두들 우리의 이런 모습을 자랑스러워했구요.
불대 수업과 수행 법회때 자기컵 가져오시는
분들 맛난 차 대접하기를 했어요. 제가 집에서
직접 수정과를 끓여서 나르느라 이틀 동안 쌩
고생 했구요.
부처님 오신날 빈그릇운동 문구 코팅해서 셰프
모자 만들어서 쓰시게 했더니 많은 분들이 즐
거워하고 음식물도 거의 남지 않았답니다.
청주 봄불교대학과 천일결사 모둠방인 "무상절절
방"에서 4월 환경실천의 달을 통해 실천한 환경
활동 내용은, 생활 속에서 빈그릇 운동 실천, 자
기컵 사용하기, 물 아껴쓰기 등이다.
먼저 밴드를 소통과 나눔의 틀로 이용하여 실시
간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를 나누며, 격려와 칭찬릴레이를 통해 실천활동
을 증가시켰다. 또한 서로간에 다른 정보와 실천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더 실천에 박차를 가해 몸
소 체험해보며, 환경에 대한 심각성과 실천의 어
려움을 느끼며 반성과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몸소 실천을 통해, 자기 자신만이 아닌, 자신의 변화가 주위를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것을 느꼈던 한
달이었다는 공통된 의견이었다. 앞으로도 환경실천은 계속 될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시골이다. 주민과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다. 추운 겨울이면 주민
들은 경로당이나 회관에 모여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계신다.
경로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릇을 씻고 커피와 술을 마시고 설거지하기
불편하셔서, 손쉬운 일회용 컵과 접시, 젓가락들을 많이 사용하시고 태워버린다. 보기에 참으로 안
타깝다.
청주 모둠방 ‘무상절절방’
이번주 환경실천 미션 수행하기
3년 전부터 회관에 일회용품 안쓰기 안내문을 주방에 붙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일회용품을 사
용하지 말자고 교육 중이다. 지금은 어르신들은 편하지만 손자와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끔찍하시
기에 손자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자고 꼬셔보기도 한다.
요즘은 조금씩 일회용컵과 나무젓가락을 덜 사용하시고 나를 보면 슬금슬금 일회용품을 숨기기도
한다. 커피나 음료수도 밥그릇에 사용해 마신다.
내가 와서 치워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힘들지만 조금씩 고쳐가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좋다
서초법당 회의 때 개인컵 사용하기와 경
전반 빈그릇실천 모습입니다.
그리고, 계피차를 끊여 자기컵 가지고 오
신분들에게 대접했습니다.
성동법당 빈그릇 실천하
는 모습입니다. 안 닦이는
건 딸기랑 사과로 싹싹
닦아먹었다고 합니다. 빈
그릇하기와 3단계 설거지
앞으로도 쭈~욱 실천해
볼랍니다.
빈그릇 실천 자기컵, 손수건
사용 하기 입니다. 나날이 발
전하고 있습니다.
환경주간 공지를 하고 정기법회와 불대 수
업후 자기컵 갖고 다니기와 그릇닦아먹기를
더욱 열심히 실천 해보았습니다.개인컵 갖고
오신 분에게는 따끈한 박하차를 드렸습니다.
다음에는 더 맛난차를 준비해야 할것 같아
요. 호응이 별로여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일산법당 수행법회 후 공양시간. 환경주간행
사 중. 인증샷 찍기하는 환경담당자를 위해
맞은편에 앉아있던 두 보살님이 사진을 의식
하며 다 닦아먹은 접시를 다시 한 번 더 깔끔
히 한 후 포즈~
작은 씨앗이 싹이 되어 큰 나무를 이루듯이
김선우 | 장호원고등학교 교사
쓰레기제로 현장 소식-1
귀영이, 환호, 동수, 홍섭이, 동윤아!
선재, 태근이, 지용이도 잘 지내고 있니?
오늘은 떠들썩하게 장난치며 비누젓기하던 저 자리 넘어 쌍무지개가 떴구나.
잔소리하면서는 가까이 할 수 없어 시작한 비누 만들기가 보건실의 명물이
되었단다. 승민이와 수민이가 종이컵에 만든 EM비누가 첫 작품이었고, 두부
판에 부어서 만든 비누는 2호가 되었단다.
장호원중학교에 가서 빈 우유곽을 수거하여 늦게까지 헹구고, 말리던 3학
년 여학생들. 운동하는 태근이는 늘 무릎이 아파서 자주 상담하면서 우유곽
을 자르고 정리해주었는데...
아침부터 EM발효액에 양잿물을 붓고 녹여서 준비해둔 용액을 보건실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수시로 막대기로 저으며 상담을 하니 거리감이 없어지고
마음도 열어 나누기를 하게 되었지.당뇨가 있는 선재는 아침을 굶고 군것질
만 해서 양배추 주스를 만들어 비만학생들과 함께 양배추주스 마시기를 같이
하며 EM비누 만들기, 홍보, 봉사활동으로 불우이웃돕기까지 활동영역을 넓
혀 나아가게 되었구나. 긴 시간 발효된 비누를 모아 후배 영식이와 희선이는
선생님의 안내로 전 세계 환경운동의 모델인 에코붓다에 정성스럽게 보냈단
다.
애들아!
작은 씨앗이 싹이 되어 큰 나무를 이루듯이 너희들의 힘
이 모여 환경도 살리고, 마음나누기도 하고, 그 결과물로
이웃돕기까지 하게 되었으니 작은 행동과 마음이 모여
무엇으로 되어 나타나는지 기대해 보자꾸나.
올해도 후배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볼거야.
너희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사랑한다. 잔소리꾼 보건샘이.
3학년 여희선
친구들과 보건선생님과 함께 비누 만들기를 하게 되었다.
발효비누는 EM발효액을 사용해 만드는데 비누를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많이 신기했다.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며 서로 고민을 들어주어
많이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보건선생님과도 많은 이야기
들을 하며 즐겁고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환경오염과 수
질오염, 재활용등 환경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시다 발효비누 만들기 활
동을 생각해 내신 것 같다.
우리가 만든 비누로 물을 깨끗하게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 할 수 있어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재미있게 비누도 만들고 봉사도 할 수
있고 환경문제에 대한 예방도 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
리가 만든 비누로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 바자회를 열
어 비누를 판매하고 그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기로 하였다. 바자회는 학교축
제 때 열렸고 바자회를 통해 EM발효액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홍보했다.
이 비누 만들기 활동으로 인해서 환경문제에 대해서 좀 더 곰곰이 생각 할
수 있었고, 지금 학교부회장으로써 좀 더 봉사하여 뜻 깊은 일들을 조금씩
해 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3학년 강영식
보건선생님과 많은 상담과 조언을 많이 듣고 다니면서 천연 비누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하셔서 저는 처음부터 비누를 만들어보았습니다. EM발효액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비누의 효능과 여러 가지의 비누 등을 알게 되었
습니다.
비누만들기 프로그램을 보건선생님과 같이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
고 조언도 많이 듣고, 고민이 있으면 고민도 들어주셨습니다. 친구들과 만
들기도 했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3학년 형들과 같이 했습니다. 형들과 같이
할 때, 형들이 대학교, 취업 등에 대한 정보를 짬짬이 알려주었고, 고민도 같
이 해주었습니다. 저는 비누 만들기 프로그램의 조교를 했습니다. 녹차비누,
숯비누 등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학교축제에서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바자회에서 비누를 기부도 하고, 판매도 했습니
다. 이천 온천공원에서 진행하는 바자회에도 참석
했습니다. 참여하면서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후배들에게 잘 알려서 후배들과 함
께 학교 환경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음식물쓰레기 제로에 도전해 보기
손효은 | 서울
쓰레기제로 현장 소식-2
지난해 12월 한살림 서울 남부지부로부터 오래된 조합원모임에 초청을 받
았다. 한살림의 밥상살림, 농업살림, 지역살림, 생명살림의 꾸준한 활동들을
듣고 요리강사님께 요리도 배우며 푸짐한 식사 대접을 받았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한살림 조합원이 된지 어언 20년,
그동안 여러 공동체의 생산지를 찾아다니며, 친환경농법을 고수하는 생산
자님들을 만나 뵙고, 감사의 마음과 먹거리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며 살아
올 수 있었다.
『생명의 근본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든 자연환경,
햇빛과 그늘, 바람과 도랑을 흐르는 작은 물까지도 귀하게 여겨 사랑을 나누
고자 합니다.』
한살림이 지향하는 생명운동의 한 부분인 환경운동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남부지부의 환경 분과원으로, 에코붓다의 봉사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임이 끝날 무렵, 한 켠에 놓여있는 가득찬 음식물쓰레기 봉지가 정토회
관의 음식물쓰레기 양과 너무도 비교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소모임과 요리강의가 많은 모임방의 특성상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이
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의무감(?)으로 지부활동가에게 한살림 남부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강의를 해보겠다고 자청하였더니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날짜를 맞추어보자고 했다.
지렁이가 활동이 활발한 4월로 정하여, 각 매장에 『음식물쓰레기 제로에
도전해 보기』란 제목으로 안내 공지를 2-3주간 하기로 했다.
강의 당일 날, 인사를 나누고, 먼저 한살림 조합원들은 어떤 형태의 환경운
동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모두들 20년 전의 나의 모습처럼 안전한 먹거
리를 이용하기 위해 조합원이 되었을 뿐, 여태까지는 환경운동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조합원들은 한살림 물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2-3가지의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조금은 의아해 하면서 열심히
강의에 집중해 주셨다.
첫째, 한살림 물품들은 생산자분들께서 제초제, 화학비료, 농약 등을 사용
하지 않고 친환경농사를 짓고 계신 덕분에 땅을 살리는 환경운동을 하고 있
고,
둘째, 국내의 가까운 이동거리로 인해 화석연료를 이용한 에너지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셋째, 매장에 갈 때는 언제나 개인용 장바구니를 자연스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으니 나무를 살리고, 숲을 살리는 환경운동이 될 수 있다.
네번째, 확실한 생활실천이 따라야 하는 빈병 재사용으로 생기는 잉여에너
지를 지구를 살리는 뜻 깊은 실천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강의를 들으
시고 자신들도 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신 듯 잠시 활기찬 이야기
를 나누셨다.
이어서 에코붓다에서 가져간, 환경실천
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한 가정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드렸다. 자신들은 생각지
도 못한 가정에서의 실천을 보고 놀라워
들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음식물쓰레기제로 6단계에 들
어가기 전, 먹을 것이 없어 탈북을 결심
한 새터민들이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보고 가슴 아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했을 때는 잠시 숙연해지는 분위기
였다.
우리 모두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면 경제적 손실을 줄여 못먹는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각성의 계기가 된 듯 했다.
6단계 내용인 ①냉장고 정리, ②장보기, ③조리하기, ④남기지 않고 다 먹
는 빈그릇 하기, ⑤지렁이를 이용한 퇴비화, 흙을 이용한 퇴비화, ⑥텃밭 가
음식물쓰레기제로 6단계 설명중인 모습
꾸기 까지 PPT로 설명을 드린 후, 가지고 간 지렁이를 보여드리고, 흙을 이
용한 퇴비화 과정을 시연해 보여 드렸다.
앞자리까지 나와서 꼼꼼히 적고, 언제
분양받을 수 있는지 관심을 보이셨다.
집에서 만들어간 수박 껍질 쨈은 대단
한 인기였다.
서초매장에서 즉석에서 구입한 식빵
에 발라 시식들을 하시고는 모두들 올 여
름 수박껍질로 잼을 만들어 드시겠다고
하니 여름이 지난 후 물어보아야겠다.
그 많던 수박 껍질들은 누가 다 먹었을
까?....
지렁이는 지금 서초매장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나는 가끔 떼어놓은
지렁이의 안부가 궁금해 서초매장에 들린다.
지렁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진정 강을 보려면 강을 직접 걸어야
이리나 | 청년포럼 중앙운영위 소속 현장탐방프로젝트 스텝
청년 생태기행
작년 4월에 시작한 현장탐방프로젝트가 처음 간 곳, 경북 영주 모래가 흐르
는 강 ‘내성천’.
우연인지 인연인지 올해 첫 현장탐방프로젝트가 다시 찾았습니다.
사실 내성천은 작년만 해도 두 번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2009년부터 진행된 4대강사업으로 해가 갈수록 강은 변하고 있는 강이기
에 우리의 관심이 더 절실한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작년에는 내성천 지킴이에
앞장서고 있는 지율스님의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의 개봉으로 더 큰
관심과 궁금증을 안고 있던 참가자들이 실제로 다녀온 뒤로 아름다운 모래 강
내성천 앓이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입소문이 퍼졌는지 청년학교 수료생들 사이에서는 내성천 꼭 한번 가
고 싶은 곳, 가야하는 곳으로 통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내성
천을 향해 찾아간 강은 그 새 더 헐벗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
다.
이번 현장탐방은 4월5일 식목일
을 맞아 영주댐이 완공되면 물속에
잠길 수몰예정지인 영주 평은면 강
둑 언저리에 있는 지율스님 텐트주
변으로 청년들이 나무심기를 진행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과 대구 부산
등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은 본격적
인 나무심기에 앞서 일단 신발을
벗어두고 강에 들어갑니다.
“진정 강을 보려면 강을 직접 걸
으며 느껴야한다”는 스님의 지론!
며칠 전 갑작스런 꽃샘추위로 쌀쌀
한 날씨에 다들 물에 발을 담그는
진정 강을 느끼기 위해 강을 걷고 있는 참여자들
지율스님께서 준비하신 모종을 심고 있는 참여자들
순간 탄성이 나왔습니다.
내성천 맑은 물을 품은 모래는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아닌 강물 속에서 흘
러 흘러 퇴적중인 모래는 곱기도 하지만 제법 알맹이가 있어서 덕분에 천연
지압마사지를 했습니다.
차가운 강물에 놀란 것도 잠시 강에 들어서자 더 크게 다가오는 강변의 변
화였습니다. 왕 버들 나무가 잘려나간 강둑과 수몰될 높이만큼 나무가 잘려나
가 속살을 훤히 드러낸 산을 병풍삼아 걸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와 나무심기 일정상 스님 텐트주변 강을 조금 거닐어 본
후 다시 올라와 나무심기에 돌입!
지율스님이 미리 영주 시장에서 준비하신 묘목과 모종들을 팀별로 배분해
심었습니다. 구절초와 쵸크베리 해당화 매발톱 등 야생에서도 잘 자랄 수 있
는 것들로 고르신 스님.
청년들은 서툴지만 열심히 삽으
로 땅도 파고 직접 물을 길어와 한
그루 나무의 뿌리를 땅에 내렸습니
다. 더 이상 스님텐트 주변이 허전
하지 않게 다양한 꽃들도 심고, 꼭
3년 뒤에도 5년 뒤에도 무럭무럭
이 자리에서 자라나길 기대하면 심내성천 안내판
는 청년들.
어차피 물에 잠길 수몰지구에 왜 나무를 심지? 라는 물음이 들 수 생길 수
있습니다.
‘어차피..’.라는 생각에 잠기던 순간 스님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수차례의 소송과 속전속결의 공사 진행, 거대 기업과의 재판과정 속에서 다
시 내성천이 본연의 모습을 찾을 가능성을 흔히들 1% 아니 0.1%로 봅니다.
혼자 수차례 소송을 겪고 수없이 강을 다니고 있는 제가 생각하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일까요?
“90%에요. 막연한 상상의 희망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희망이 없다면 버틸
수 없죠.
영남의 젖줄 낙동강을 도보로 다섯 번을 왔다 갔다 다녀보니 그제야 비로소
강이 보였다는 스님.
스님의 희망은 ‘막연한 것 이 아닌 정말 현실적인 것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
을 해봅니다.
강을 다니며 본 스님은 단지 모래톱과 물줄기를 본 것만은 아니겠지요.
물의 흐름이 막혀 강바닥이 드러나는 지금의 내성천이 다시 본연의 모습을
찾아 다음세대들이 누릴 아름다움을 보셨을 겁니다.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
나무의 삶도 물의 삶도 잠기는
곳 그 속에 사는 노루, 삵, 수달,
강아지, 흰수마자의 삶, 수 백 년
은 넘었을 마을의 역사, 누군가의
고향, 백로와 먹황새의 쉼터, 왕
버들나무 뿌리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
다.
물론 세상 그 모든 건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변화의 대상이 일으키는 순리의 것이 아니라면.....?
약 8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내성천 정비 사업으로 보를 건설하고 제방을 쌓
고 자전거 길을 만들고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정말 누구를 위한 필
요인지.
만약 철저하게 ‘인간’에 맞춰진 편의와 여가생활, 효율적인 물 사용을 위한
것이라면 저는 내성천을 감싸 안는 언덕을 수없이 뛰어다녔을 노루에게 한없
이 부끄러워집니다.
물 부족과 홍수피해를 해결한다는 이유에 22조 원이 넘어가는 국가재정을
투입해도 주민들은 홍수피해를 더 걱정하고, 제방을 다시 쌓을 지도 모르는
우려가 생기고 있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피
나무심기에 참여한 청년들~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잠깐 이지만 내성천을 걸으면서 수달
과 철새들의 흔적을 봤으니까요.
우리는 나무심기가 마무리되고 내성천 하류가 간직한 절경을 보기위해 회
룡포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시간이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에 다다르고 참가자
들이 각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 간단하게 나누기를 하고 차에 올랐습니
다, 다들 내성천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대부분 정작 식목일에 나무를 심어
본 것은 처음이라며 뿌듯하다는 이
야기가 많았습니다.
또, 반대를 위한 반대 입장이었
던 4대강사업에 대해 오히려 객관
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
닫고 이 사안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의견부터 이렇게 거대한 사
업의 필요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내가심은 한 송이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 만 으로도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뿌듯해지는 하루였습니다.
비록 가까이서 보지도 갈 수도 없는 내성천이지만 작은 뿌리하나를 그곳에
내렸다는 것 자체가 나와 그곳이 연결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도 내성천을 향해 90%의 희망을 가져야겠습니다.
내성천에서 스님말씀을 듣고 있는 청년들
EM발효액 만들기
편집부
부뚜막수다
쌀뜨물이 심각한 수질오염원 중 하나라는 것을 다들 알고 계시지요? 쌀뜨
물 3L를 정화하려면 오염되지 않은 물 1톤(약 440배)이 필요합니다.
이번 호에는 수질오염원인 쌀뜨물을 이용하여 EM발효액을 만드는 방법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잘 읽어보시고 환경실천에 함께해 보시기 바랍니다.
<EM발효액 만드는 방법>
준비물 : 2리터 pet병, 쌀뜨물, EM원액 소주잔 한잔, 설탕 소주잔 한잔, 천일염
소금 1/2t(정제염 안됨)
1) 페트병을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2) 처음 쌀뜨물은 버리고 두 번째부터 받는다.(유기농은 첫 번째도 가능)
3) 쌀뜨물을 약간 미지근하게 데운다.(여름은 그냥 해도 좋음)
4) 페트병은 위에서 4cm 남겨두고 쌀뜨물을 병에 붓는다.
5) EM원액, 설탕, 소금을 넣고 잘 흔들어 준다.(소금, 설탕 녹도록)
6) 약간 따뜻한데 두면 빨리 발효가 된다.(냉장고 뒤쪽, 햇빛 있는 곳은 안됨)
7) 다음날도 한 번 더 흔들어 준다.
8) 그 다음날부터 병이 팽팽해지면 가스를 빼준다.
9) 두 번째 가스를 빼면 사용해도 된다.(막걸리 같은 냄새가 나면 성공)
*실패원인 : 병이 깨끗하지 않을 때, EM원액을 너무 적게 넣었을 때, 농
약이 묻은 쌀뜨물일 때
<사용처 및 사용방법>
1) 소독
①행주, 도마, 병, 용기 등은 분무 후 10분 이상 두었다 헹구어 사용한다.
②변기, 하수구는 EM발효액을 부어 준다.
③바닥 청소는 걸레를 발효액에 담궜다 살짝 짜서 닦는다.
2)악취 제거
①여름 장마철에 걸레, 빨래를 50배 희석액에 담궜다 짜서 말린다.
②신발, 신발장에는 분무하되 너무 많이 뿌리지 않는다.
3)해충, 벌레를 죽이거나 쫓을 때
- EM발효액에 계피를 넣어 우려낸 후 분무한다.
4)식물을 키울 때
- 콩나물, 화초, 채소를 키울 때 EM발효액을 100배 희석하여 분무한다.
5)기타
①샤워 후 몸이나 머리 헹굴 때 60~70배 희석하여 사용한다.
②무좀에는 EM발효액에 매일 1~2회 10분정도 발을 담근다.
③음식물 쓰레기에 발효액을 뿌려서 흙에 묻어주면 퇴비가 된다.
* 의문사항이나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서울정토회 환경
팀(02-587-8997)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4/21, 4/28 강원경기동부지부에서 일명
‘환경실천 DNA 물들이기’ 워크숍을 2회 진행
하였다. 1주차 코스에서는 ‘정토회에서 환경활
동을 하는 이유’, ‘에코붓다에서 빈그릇운동을
시작하고 확산하는 과정’, 그리고 ‘우리가 법
당에서 어떻게 빈그릇을 실천하고 쌀뜨물 3단
계 설거지를 할 것’인지를 주제로 진행하였다. 설
거지 3단계 동선을 그려보고, 수행법회에서 직접
해보기로 하였다.
2주차 코스에서는 음식물쓰레기 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생활실천 방법을 공유하고, ‘수박껍질
쨈, 수박껍질조림, 식은밥피자’를 만들어 보면서 음식
물쓰레기제로를 직접 실천해 보았다.
서울제주지부에서는 10년 이상 사용되어 오던 분리
수거함을 리모델링하였다. 버려지는 박스를 이용하여
사이즈에 맞게 통을 만든 후, 여러 번에 걸쳐 초배지를
바르고, 지나간 달력에서 오린 야생화를 잘라 붙였다.
마지막으로 못 쓰는 끈을 꼬아 만든 손잡이를 단 후,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니스칠을 하는 것으로 리모델
링 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니스칠 대용으로 양초를 칠
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에코붓다 이모저모
지난 4월 27일 서울제주지부에서는 조계사
전통문화마당에 참여하여 환경부스를 진행하
였다. 시민들에게 친환경적인 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대안상품을 소개, 판매하고, 에
코붓다의 쓰레기제로운동을 알리기 위해 환
경실천 5가지를 판넬을 이용하여 스티커붙이
기 행사도 진행하였다.
특히,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자기컵을
가지고 오신 분들에게 매실차 대접하기 행사
를 진행하였는데, 생각보다 자기컵을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 4월 일산지부에서는 봄맞이 나비바자
회(나누고 비워서 가볍게~) 진행하였다. 사
전 공지를 시작으로 집에서 안 쓰는 천을 이
용하여 임시게시판을 만들고 봉사자
를 요청하여 소임을 나누는 등 꼼꼼
하게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바
자회를 하고 남은 물건은 아름다
운가게에 기부하였다.
지난 5월 1일 인천지부에서는 내 마음의 푸른마당을
열어 뒷물 수건 만들기를 진행하였다. 바느질하면서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가 재미있어서 웃
음바다가 되었고, 팀원들 간의 친목이 돈독해지는 시
간이었다.
올해 초부터 마산지부에서는 이성우님이 주축이 되
어 환경살리기 실천 운동의 일환으로 음식물 쓰레기
를 이용한 지렁이 배양과 EM발효액을 이용하여 친
환경 퇴비 만들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산법당이 있는 건물 옥상에
친환경 텃밭을 조성할 계획으로 1차
적으로 폐스티로폼과 폐화분을 이
용하여 작은 텃밭을 조성하고 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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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에코붓다 Ecobuddha 에코붓다 실내화제문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그대의 오랜 벗 토영바람이 짧은 글로 실내화에 고하노니 네 그동안 수고가 많았구나 섬세하지 못하고 자상하지 못한 친구를 만나 때로는 험하게 때로는 함부로 끌려 다녔어도 너는 한번도 불평불만 하지 않았구나 여름이고 겨울이고 한결같이 제 자리에서 친구를 기다려 주었고 부르면 부르는 대로 원할 때마다 친구이 발걸음 옮겨주었구나 누가 있어 너만큼 자상하고 친절하게 친구를 도와주겠느냐 누가 있어 너만큼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쓰이겠느냐 너랑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어 네 꿈대로 끝까지 잘 쓰이도록 하고 싶어 떨어진 부분을 열 번이나 매워가며 질기게도 썼지만 이제 때우는 데도 한계가 있어 더이상 고쳐쓸 수 없어 너와 이별할 때가 왔구나 고맙고 미안함 맘으로 이렇게 네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노니 나의 벗 실내화여 잘 가시게 부디 새 몸으로 바뀌어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시게 그동안 그대와 함께 하여 행복했네 잘 가시게 그대의 오랜 벗으로부터 상향 에코붓다Ecobuddha “진정강을보려면강을직접걸으 며느껴야한다”는스님의말씀 을듣고내성천을건너고있는 참여자들
  • 2. - 김세진 문득 들렀습니다. 산 그림자 붉은 저녁 당신의 오래된 집도 꽃등을 달았더군요 어디쯤 걸어오실까 연신 바람은 보채고 서쪽 하늘 끝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잔약한 산새들을 보듬는 운판소리 먼 길은 소리를 좇아 더듬어 갑니다 몇 소절 슬픔 뒤로 생각도 끊어지고 꽃잎은 너덜겅 위로 시나브로 떨어져서 저 붉은 이승의 한때 잠시 흔들리는 Ecobuddha
  • 3. Ecobuddha 생태적 깨달음 대안적 생활양식과 쓰레기제로운동(3) 지속 가능한 삶 자발적 포기는 기쁨이다 | 최광수 특집-에코보살 심층인터뷰 더 적게 벌고 더 행복하기. | 윤태임 내가 맑아지면 주변도 맑아진다 | 김영주 환경의 달 지부 소식 빈그릇 실천과 자기컵 쓰기 캠페인 | 편집부
  • 4. 에코붓다 5・6월호 | 펴낸 날 2014년 5월 27일 | 펴낸곳 사단법인 에코붓다 |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1585-16호 정토회관 2층 | 전화 02-587-8997 | 전송 02-587-8758 | 전자우편 ecobuddha@jungto.org 홈페이지 www.ecobuddha.org | 만든이 김희선, 윤정순, 이광성, 백혜은, 박기일, 장선우, 박미선, 이미영 단순하고 소박하게,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풀꽃 향기 맡으며 흐르는 강물처럼 늘 새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당신은 에코붓다입니다. 에코 붓다는 생태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생명입니다. 쓰레기제로 현장 소식 작은 씨앗이 싹이 되어 큰 나무를 이루듯이 | 김선우 음식물쓰레기 제로에 도전해 보기 | 손효은 청년 생태기행 진정 강을 보려면 직접 걸어야 부뚜막수다 EM발효액 만들기 | 편집부 에코붓다 이모저모 에코붓다 후원회원
  • 5. 대안적생활양식과쓰레기제로운동(3) 생태적 삶을 위한 대안적인 생활양식의 정착 차원에서 ‘쓰레기 제로운동’ 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서 쓰레기란 ‘못쓰게 되어 내 버릴 물건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즉 소유자 또는 이용자 입장에서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버려지는 물건들을 우리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특정시점에서 소유권 또는 사용권을 가진 특정 주체의 가치가 개입된 지극히 편협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이 ‘쓰레기’라는 말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철 쓰레기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갔을 때 얼마든지 충분히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냥 폐기 처분되는 현실을 자주 볼 수 있다.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소비주의 풍토 속에서 아까운 물건들이 그냥 버려지
  • 6. 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바로 이러한 문 제들을 발생시키는 가치와 사회구조에 익숙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깊이 되돌 아보고 반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연계에서는 본래 ‘쓰레기’란 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 자연계의 생태적 순 환체계 속에서 ‘불필요한 것’이란 없다. 모든 것이 스스로 존재의 의미가 있 으며 무수한 연관 속에서 서로를 살리고 유지시키는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쓰레기라고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총체적 연관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인식체계 속에서 나온 허위의식이라 할 수 있다. 예 를 들어 벽돌이 방에 있으면 쓰레기지만 공사장에 있으면 훌륭한 건축자재가 되고, 냉장고가 부엌에 있으면 훌륭한 가전제품이지만 밭에 있으면 쓰레기 가 된다. 즉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사용되어야 할 곳에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쓰레기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안적 생활양식을 위한 ‘쓰레기 제로운동’ 속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눈에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청소’의 차 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쓰레기를 얼마만큼 줄일 수 있 느냐라는 가시적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물을 본래 자기 쓰임새대로 되돌 려주기 위한 의식개혁과 사회구조 변화의 노력을 포함해야 한다. 자연계의 순환체계에 적응했던 전통적인 생활양식 속에서는 쓰레기 문제 가 심각하지 않았다. 먹고 남은 음식물은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의 먹이로 제 공되었고, 분뇨는 논밭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나마 나 오는 쓰레기들 중 다수는 난방 및 취사연료로 쓰여졌다. 이처럼 생태 순환적
  • 7. 인 삶의 방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오랜 경험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었다. 하지만 생활 공간 또는 마을 단위에서 ‘밥’과 ‘똥’이 유기적인 순환고리로 이어지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공존하던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크게 변모했다. 대량생산, 대 량소비, 대량유통, 대량폐기의 현대 산업사회체제는 자연계로부터 엄청난 양의 자원을 끊임없이 채취, 가공하여 생산품을 만들어 내고 각종 광고를 통 해 소비를 부추기고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켜 엄청난 폐기물들을 자연계로 쏟 아 냄으로써 자연을 파괴시켜 왔다. 그리고 오늘날 쓰레기문제는 환경문제 를 발생시키는 이러한 구조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현대인들은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기본욕구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넘어 각 종 상업광고에 현혹된 채 부풀어진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건을 구매 하고 소비한 후 폐기하고 있다. 끊임없는 소비욕구의 창출은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원동력으로 이해된 지 오래이며 과잉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 으려는 사람들과 여건과 능력만 된다면 마음껏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갈 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다 잘 살고자 노력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의 생존 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환경문제라는 사실이 현대 인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를 정확히 읽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차원에서 우리는 ‘쓰레 기제로운동’에 담긴 철학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계속)
  • 8. 자발적 포기는 기쁨이다 최광수 | (사)에코붓다 대표, 경상대학교 교수 지속 가능한 삶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있다. 분노가 들끓고, 자포자기가 생겨나고, 책임을 따지는 비난의 목소리가 드높다. 한국호가 표류하고 있다 는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두운 바다 밑에서 꺼져간 생명들 과 허망하게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아픔을 온 국민이 보듬고 다시는 이 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근차근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봐야 할 때이다. 많은 이들이 ‘미안하다.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가슴에 사무치는 이 단어를 앞에 두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뼈를 깎는 각오로 사회제도를 재 정비하고, 국가 기강을 단련하고, 안전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밑뿌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과 이기심, 황금만능주의를 이번 기회에 깊이 성찰하고 뒤틀려버린 우리 삶의 방향을 제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 9. 지난 50 여 년 동안 우리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RPM 눈금을 붉은 색에 두고서 무한질주 해왔다. 해마다 GDP가 크게 늘어나는 게 정상이고, 몇 년 에 한 번씩 집을 늘려 이사가고, 하다못해 집집마다 살림이라도 늘어나는 게 정상인 삶을 살아 왔다. 옷장 속의 옷은 유행 따라 늘어만 가고, 신발장도 신 든 안 신든 켤레 수가 늘어나고, 가전제품은 집안 곳곳을 차지해왔다. 우리 는 모범적인 경제개발 국가로 세계로부터 인정받아왔고, 이제는 많은 나라 에서 한국을 따라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고, 우리는 한류를 통해 이를 마음 껏 뽐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장, 발전, 확대, 풍요의 결과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 이 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충돌과 탈선을 피하 고 지속가능한 주행을 하기 위해서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호의 승객 모두 가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우리 문명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악마적 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주의 사회 이며, 그것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이다". 1970년대 '레바논 사회주의 진보당'을 이끌었던 카말 줌블라트의 말이다. 어떤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인가? 다 같 이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라 다 같이 가난한 사회라는 말이다. 헐벗고 배고픈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의식주는 완전히 해결하되 인간의 욕망 을 충족시키기 위한 잉여의 물질로부터는 가난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리라. 서울 정토회관에서 만난 에코보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미래에 대해 늘 불안함을 느껴서 어떻게든 많이 모아서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고 안달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 10. 알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몸과 마 음이 편안해지니 삶이 단순해지고, 소비도 줄어들면서 더 많이 벌기 위해 애 쓰던 시간들을 봉사하는데 사용하면서 살게 되었어요. 전체적으로 삶의 만 족도도 올라갔구요." 에코붓다에서 진행해왔던 빈그릇 운동의 문구처럼, “비 우면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비우는 것이 박탈감이나 소외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함, 여유로움, 만족으로 이어진 다는 얘기다.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다. 수많은 성현들께서 말씀 하셨듯이 채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비우면 삶이 여유로워지면서 매순간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되고, 미래를 위한 준비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겁먹고 두려운 상 태에서 허둥대다 보면 정작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이기 때 문이다. 그러면 물질이 넘쳐나고, 모두가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누리 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함께 살면서,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 을 비우는 것이 가능할까? 에코보살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예전에도 환경운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실천을 했었지만 오염시키니까 안 버려야 하 고, 무조건 안 써야 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고 나 서는 물건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의 도움 을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과 소중한 마음으로 물건을 대 하게 되었다. 차츰 스스로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기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척 편안해졌다.” 고마움과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 하루, 내가 비우고 포기할 건 무엇일까? 참다운 문명이란 자발적 포기의 기술이다 ㅡ마하트마 간디
  • 11. 더 적게 벌고 더 행복하기 윤태임 | 서울 목동 특집-에코보살 심층인터뷰 김성균(이하 “김”) : 정토회와 인연이 된 계기와 언제부터 시작을 했는지 얘 기해 달라. 윤태임(이하 “윤”) : 남편이 박사 학위 받느라고 외국에 가서 한 4년 살다 가 시아버님이 많이 아프셔서 1996년도에 들어왔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데 병원 가는 길목에 ‘월간정토’ 사무실이 있었다. ‘저기가 뭐하는 덴가, 저렇 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면서 ‘월간정토’ 스티커작업을 도와주기도 했다. 거기서 ‘월간정토’ 한 권을 얻어서 ‘조금씩 달라지는 삶, 깨달음의 길로 가보 시지 않으시렵니까?’라는 책 속의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조금씩 달라 지는 삶’ 그 문구가 너무 맘에 들었다. 다시 미국으로 가기 전에 ‘깨달음의 장’을 한 번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아버님이 일요일에 돌 아가시고 그 다음 주 수요일에 ‘깨달음의 장’에 갔다. 4살 된 아이는 친정어
  • 12. 머니한테 맡기고, 시어머니한테는 아버님 영가를 잘 모시고 오겠다고 거짓 말을 했다. ‘깨달음의 장’에 가서 많은 것을 얻었다. 예전에 학생운동도 하고 노동운동도 조금 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사회활동을 계속 하는데 나는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빌미로 도망을 갔다. 근데 그게 죄 책감이 있었는지 군인들한테 쫓겨 계단 밑에 숨어서 철문이 닫히는 꿈을 종 종 꿨다. 그런 꿈을 꾸면 밖에 안 나갔다. 징크스가 생겨서 그런 꿈을 꾸고 나서 약간 우울증 증세도 있었고 뭔가 한 번 해 보려고 하면 잘 안 풀리는 마 음의 갑갑함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의 구분은 내가 노란 안경을 꼈기 때문에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거구나’. 이것을 정말 잊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깨달음의 장’을 다 끝내고 나와서 크게 깨달은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의 구 분은 내가 노란 안경을 꼈기 때문에 세상이 노랗 게 보이는 거구나’. 이것을 정말 잊지 말아야지’하 고 다짐을 하면서 문경 수련원의 길을 내려왔다. 그 당시 전두환, 노태우...그런 갑갑한 사회 현 실 속에서 뭘 한 번 해보려고 하는데 힘이 부치니 까 그냥 결혼을 빌미로 도망 나온 것에 대한 죄책 감.. 이런 것들이 풀어진 것 같다. 그 뒤로는 더 이상 그런 꿈을 안 꿨다. 홀가분함이 정말 좋았다. 문경에 다녀와서 시아버 지 유품을 정리하는데 금강경 책자가 나오길래 시어머니가 혼자 계시니까 그 걸 읽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케치북을 사서 금강경을 그대로 베껴서 인터뷰하고 있는 윤태임님
  • 13. 드렸다. 그 당시 ‘월간정토’ 사무실에 계시던 묘수법사님이 ‘월간정토’가 든 가방 하 나를 주시면서 미국에 가서 뿌려보라고 해서 일단 챙겨서 갔다. 미국에 다시 가서 달라진 점은 전에는 남편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면 뭔지 모르는 질투 심이 막 났다. ‘너는 여기 공부하러 왔지, 나는 뭐냐?’며 약간 화도 나고, 설 거지를 할 때가 되면 ‘너는 왜 설거지 안 해!’ 이런 마음이 참 많았다. ‘깨달음 의 장’에 다녀오고는 그 마음이 좀 없어졌다.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울지도 않고... 나중에 남편한테 물어보니까 내가 ‘깨달의 장’에 다녀오고 난 뒤에는 자기가 많이 편안했다고 하더라. 뭘 해줬으면 바라 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유학생 부인들을 이 동네 저 동네 끌어 모아다가 국수를 삶아주면서 ‘깨달 음의 장’에 다녀온 후 얻은 자유로움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스님 법문 테이프 를 함께 듣고, 나누기도 했다. 초발심에 느낌들을 많이 나눴다. 그리고 정말 기적 같은 일은 엄격한 부모 밑에 자란 한 분이 애기가 안 생겨서 병원에 불 임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아줌만데, 남편의 모든 행동이 불결하고 더럽다고 느껴졌다 한다. 이랬던 분이 스님 법문을 공부하면서 마음이 녹아져서 나중 에 애기를 갖게 됐다.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이 생기고 그렇게 6개월 정도 생활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거길 떠나고 난 이후에 콜럼버스 법당이 하 나 생기게 됐다. 그 6개월이 지금 돌아보면 내 생애의 큰 감동이다. 김 : 그 때가 시기적으로 언제인가? 윤 : 1996년에 ‘깨달음의 장’을 하고 한 97년? 서울에 와서 북한 동포 돕기 를 시작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정토회 활동을 한 것은 97년부터다. 2차 천일
  • 14. 결사도 시작했다. 새벽 기도 갔다 와서 밥해 먹고 봉사한다고 11시에 또 갔다 가 끝나고 나서 저녁 해 먹고 또 저녁에 불교대학에 갔다. 집에는 밤 10시에 왔던 것 같다. 처음엔 진짜 신심이 나서 많이 했다. 큰 딸은 그 당시 4학년이 었는데 엄마가 와서 밥 차려줄 때 까지 가만히 앉아서 밤 12시까지도 지키고 있었다. 스님 법문 공부 한창 할 때니까 큰 딸한테 참회한다고 108배를 하 면, “그래, 며칠이나 하나 보자.” 이러고 자기가 지켜봤다고 하더라. 안 되는 건 안 되는 줄 알고, 내가 할 만큼은 요만큼이다... 하면서 나아가니까 잡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는 복잡한 것들 속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김 : 정토회 식구가 된 뒤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 엇인가? 윤 : 예전에는 내가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선물을 하나 하면, 내 성 의껏 그냥 하면 되는데 내가 한 게 열이면 상대방은 스물 정도로 생각해주기 를 바라면서 머릿속이 늘 복잡했다. 그런데 그런 성격은 정토회 활동을 하면 서도 그렇게 많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화나는 일도 참 많았다. 스님이 지나 가시다가 “너는 왜 그렇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냐.” 이럴 만큼 감정의 기 복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뭔가 잘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많았다. 그러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줄 알고, 내가 할 만큼은 요만큼이다... 하면서 나아가니 까 잡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는 복잡한 것들 속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 다. 김 : 지금은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 윤 :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많았고. 남편도 다른 교수
  • 15. 들과 비교해서 이렇게 돼야 한다는 것이 많았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밑 바닥에 깔려 있어서 가끔씩 나타나기도 한다. 김 : 어쨌든 간에 관계는 계속 변하신 것 같다. 정토회에서 또 중요한 게 환 경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사회생활 할 때에는 어땠는지, 내가 자연 을 보는 눈이 어떻게 변했는지 말해달라. 윤 : 얼마 전까지 백화점에서 일을 했는데 ‘아...내가 아직 안 변했구나’ 느 꼈다. 그리고 예전에 사회운동의 관점이 잘못됐었구나... 좋은 것과 나쁜 것 에 대한 구별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토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하는 것 도 어떤 고집이 있어서 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서 살면서 ‘융통 성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 삶에서 부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정토회 방식의 환경 운동을 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남 편이 약간의 우울증이 왔었다. 교수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서 그만 뒀는데 우 리의 공통 목표인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생활하자’ 라는 말이 그 당시 내 가 절망에 좀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본격적으로 실험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라는 식으로 반전이 되더라.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지를 이 기회에 한 번 해보자. 절 호의 찬스다’ 김 : 그 때 시기가 언제인가? 윤 : 2009년이었는데 그 때까지는 내가 매일 정토회에 상근하다시피 하다 가 정리하고, 당장은 어디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가능한 시간제로 한번 해보자 싶어서 아파트 청소, 아는 집 가게 배달... 이렇게 시간제로 조
  • 16. 금씩 하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그 당시 내가 주인이 되게끔 지켜낸 것 은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지를 이 기회에 한 번 해보 자. 절호의 찬스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다. ‘내가 오늘 얼마를 썼고, 우리 집 식구가 얼마를 먹고 얼마를 쓰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지켜볼 수 있는 참 좋은 시 기였다. 단대부고의 급식실에 들어가서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면서 빈그 릇이나 환경실천이 어떻게 되는지를 볼 수 있었다. 거기서 8개월 있었는데 ‘빈그릇 운동’ 할 때 내가 그런 경험을 먼저 하고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라 는 생각이 간절했다. 실제로 그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으로서 ‘야, 내가 운동 을 그렇게 부족하게 했었구나’ 라는 게 정말 밥 먹는 애들의 심정을 잘 몰랐 고, 빈그릇이 안 되는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운동 적 차원에서 했던 것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거기서 일 하 면서 그 동안 살아왔던 것들도 검토해볼 수 있었다. 남편이 25년 간 꼬박꼬 박 갖다 주는 돈만 갖고 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갑자기 바뀌어버린 남편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고 마음의 갈등도 해결해야 했다. 내가 그 동안에 환경 운동을 나름 실천해왔던 것들이 나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 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그 당시 큰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중요한 시기였다. 애한테 내가 힘든 것을 티내면 안 될 것 같고, 머리가 좀 복잡해지더라. 그래서 월・화・ 수요일은 법회, 목・금・토・일요일은 성당에서 ‘술 문제 있는 사람들의 모 임’ 이렇게 일주일동안 스케줄을 꽉 짜서 움직였던 그 때가 정말 치열하게 내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봤던 시기였다. 그 때가 참 좋았던 것 같고, 내가 그
  • 17. 동안에 환경 운동을 나름 실천해왔던 것들이 나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이번에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적응을 하는데 진짜 안 되더라. 화장을 해야 되고 염색을 해야 되고 옷은 유니폼을 입어야 되고. 그 거 하나하나를 유지하는 게 너무 벅찼다. 9개월간 일 했는데 거기는 밥을 직 원식당에서 먹는다. 거기 식당 밥을 먹다보니 너무 짜서 물이 많이 먹히고, 되게 피곤하고 좀 힘들더라. 그래서 도시락을 싸갖고 다녔는데 도시락을 먹 으니까 편안하고, 힘든 것이 많이 없어졌다. 그래서 어떤 곳에 가서 적응이 안 될 때 일단 내가 나를 스스로 지키는 것은 환경적으로, 나 혼자 개인 컵 들고 다니고, 손수건 갖고 다니고, 밥도 싸갖고 다니고. 이렇게 저렇게 내가 내 생활을 정리를 해가면서 바깥 사회에 대처하는 힘을 좀 키웠던 것 같다. 인간관계는 그렇게 많이 달라진 것 같진 않은데 어쨌든 사람에 대해서 좋 고 나쁜 분별이 없어지니 쉽게 다가가게 되고, 사람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 는 게 좀 덜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김 : 질문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겼다. 예를 들어서 학교 급식 하는데 빈 그릇이 안 되는 시스템이고, 또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데 생태적이지 않은 밥 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 알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윤 : 백화점은 일단 비닐을 무한정 공급한다. 투명한 비닐을 각 매장마다 원하는 만큼 공짜로 지급이 된다. 그러니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무조건 모든 상품을 비닐에 넣어서 준다. 그러면 고객 카트에 비닐이 50장 이상 가는 경 우도 많다. 거기서 일을 할 때 많이 걸리더라.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안 싸 주고 싶은데, 같이 지켜야 될 흐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았다. 또 백화점 은 쓰레기들을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무조건 한 투입구에다가 버린다. 밑에 층에서 아저씨들이 분리수거를 하긴 하는데 큰 것만 분리를 하지 웬만한 건
  • 18. 다 일반 쓰레기봉투로 나간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10명 중 8명은 밥을 남 긴다. 일단 밥을 먹으려고 할 때에는 배가 고프니까 많이 담고, 또 그걸 생각 없이 많이 남긴다. 백화점 들어가는 순간부터 ‘여기 빈그릇운동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을 했다가 결국 쫓겨났는데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많이 튄다고 보더라. 빈그릇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활용해서 업체와 학교를 대상으로 빈그릇 운동 교육을 시키고 그것으로 인해 절약되는 돈만큼 학교와 업체 반반 분담해서 교 육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교통비하고 활동비를 지원하는 일을 구청 사업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김 : 학교에선 어땠나? 윤 : 단대부고에서는 주로 설거지를 하고 뒤에 세팅하는 일이었는데 아이 들은 무조건 남긴다. 먹을 만한 방울토마토도 열 알씩 식판에다 넣어주면 다 남긴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실제 먹는 양은 정말 적다. 내가 8개월 전에 처 음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이 쓰레기양을 재어보진 않았지만 눈짐작으로는 늘 어나면 늘어났지 줄진 않았다.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급식업체는 거의 없다. 학교하고 중간업체가 있고 학생이 있는데 중간업체의 입장에서는 부모님들한테는 말을 안들을 정도로 음식이 나가고, 학교 측에서는 조금이라도 싸게 단가를 자꾸 낮추니까 업체 에서는 재료가 싼 것을 이용한다. 학생들이 2500명 정도 되는데 저녁까지도 식사가 나간다. 시스템을 뷔페식으로 바꿨는데도 거의 많이 남긴다. 토마토 같은 경우에는 먹을 만한데 일단 나갔다 온 거는 버려야 되는 게 원칙이다.
  • 19. 그래서 남긴 음식을 설거지 하려면 고속의 수도꼭지가 나와서 수압으로 드라 이클리닝을 한다. 통에 쌓인 음식쓰레기는 바로 봉투에 담겨서 나가는데 진 짜 어마어마하다. 통탄할 일이다. 거기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구청에서 우리 처럼 빈그릇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활용해서 업체와 학교를 대상으로 빈그릇 운동 교육을 시키고 그것으로 인해 절약되는 돈만큼 학교와 업체 반반 분담 해서 교육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교통비하고 활동비를 지원하는 일을 구청 사 업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경험들을 이용한 직업이 하나 생겼으면 좋 겠는데 아직 서울시에 건의하진 못했다. 나처럼 돈을 좀 벌어야하는 사람들 에게는 그런 일들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들 대부분이 돈이 없어서 나온 아줌마들 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은 남편이 버는데 부수입을 얻기 위해서 나온다고 하더라. 주로 쉬는 시간에는 혼자서 애니팡(게임), 증권 같은 것을 많이 했 는데 놀라웠다. 퇴근해서 같이 차를 타고 갈 때 대부분 다 외면을 한다. 나 는 그게 또 상처였다. 나는 사람들 만나서 빈그릇운동 얘기도 하고 할 말이 많은데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도 참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중에 책방에 가서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책을 봤는데 그 때야 이해가 됐다. 그 사람들은 뭔가 감정적 교란이 싫은 거다. 나는 일부러 교란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쑤시고 들어가야 하는 사람인데 교란이 되기 싫으니까 퇴근시간 출근시간 조 차도 자기만의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교란 받는 게 싫으니까 다른 사람 한테 웃음조차도 잘 안주는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사회 속에서 참 다들 대견 하게 살아가고, 환경적이지는 않지만 정말 식구들 다 건사해가면서 나름 잘 살아가는걸 보며 배운 점도 많았다. 동료 직원한테 “내가 어떠냐?”고 물었더 니 “언니 좀 별나. 언니 앞에 오면 밥도 남기면 안 될 것 같다” 고 했다. 어쨌 든 끝날 때 좋게 나오기는 했는데 그런 경험들을 했다.
  • 20. 김 : 이제 본격적으로 녹색소비에 대해서 물어보겠다. 윤태임님은 녹색소비 가 첫번째로 써 있었다. 가능한 적게 사기, 재활용품 이용하기, 에너지 덜 쓰 기 등 테마별로 좀 구체적으로 본인의 녹색소비에 대해서 말해 달라. 윤 : ‘적게 먹고 적게 쓰기’는 일단 내가 부유하게 자라지는 않아서 많이 써 본 경험이 없다. 백화점에서 일할 때 내가 열등감을 느끼려나 했는데 아니 더라. 열등감을 느끼기 보다는 인형 같이 살더라. 상품권을 가져와서 돌려 쓰고. 또 몇 푼 남겨서는 또 상품권으로 하고. 거의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종 이 돈 갖고 놀았던 그 사회더라. 정토회에 있을 때에는 안 쓰는 쪽으로 실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200만원, 250만원 주면 어떤 때는 모아서 되 레 용돈을 300만원 줬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돈을 잘 벌었지만 나는 돈을 안 쓴다는 차원에서 애들 과외도 안 시켰다. 우리 큰 애 같은 경우에는 대치 동 살면서 과외를 거의 안했다. 나중에 수학 과외만 조금 했는데 학부모들이 우리 애를 구경하러 왔다고 하더라. 그래도 그냥 저냥 해서 갈만한 데 갔고, 둘째 도 언니가 그렇게 했으니까 과외는 아예 생각도 안하고 그냥 학교만 겨 우겨우 다녔는데 그 당시에는 생활패턴이 그랬다. 무조건 안 쓰고 남는 것 은 좋은 데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남편대로 살고, 우리는 우리대 로 해서 거의 옷은 물려 입었다. 근데 그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르냐면 그 때는 내가 쓰려면 한 달에 100만원, 200만원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주눅이 안 들었다. 왜냐면 내가 안 쓸 뿐이지 쓴다면 나는 저 카트를 다 채 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내 자만이었다는 생각이 든 다. 안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 써야 되더라. 안 쓴 과정 속에서 우리 부부 도 안 쓰면서 애들을 쓰지 않게 했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체육대 회 때 하얀 티가 필요하면 우리 애들은 당연히 “엄마, 하얀 티 좀 어디서 얻 어와” 이러지 “하얀 티 사줘” 안한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재활용 물건을 보
  • 21. 죠. 뭐 주워올 게 없나. 미국에서 지낼 때도 늘 주웠다. 미국은 차만 한 대 끌 고 나가면 살림살이를 다 주울 수 있다. 미국은 지하창고 개방해서 가라지세 일 한다. 그리고 벼룩시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든 생각은 기본적으로 많이 사서 많이 버리는 거였다. 그래서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이 집이 창문이 많다. 창문이 많아서 좋다고 왔는데 겨울에는 너무 춥다. 12월 9일 처음 여기 왔는데 불을 때니까 너무 따끈따끈 했다. 연립에서 살 때에는 따끈따끈한 맛이 없고 미적지근했었다. 여기는 완전 한증막처럼 따 끈따끈해서 세게 틀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달 나온 가스 값이 한 32만원. 그런 데 여기는 워낙 춥기 때문에 그냥 온도를 낮춰놔도 보일러를 유지하기 위해 서 가스가 들어간다고 했다. 기본으로 나오는 게 적어도 17만원, 18만 원 정 도 나온다고 했다. 돈은 없는데 이렇게 돈이 나가면 큰일이지. 우리 집에서 지출 비중이 가장 큰 것이 보험료, 세 명의 핸드폰 비.그리고 가스비였는데 다른 건 다 줄였는데 가스 비는 어떻게 줄일까 고민을 했다. 한 해는 춥게 살 아봤고, 돈도 많이 내봤고. 여름철부터 어떻게 줄일까를 계속 고민을 했는데 창문 위쪽에 커튼을 박았다. 비닐을 치고 그 위에 헝겊을 댔다. 이렇게 해보 니 가스비가 32만원에서 4만원까지 줄었다. 친정 엄마는 그 얘기 듣고 울더라. 마루는 물 론 거의 냉방이다. 천 쪼가리를 얻어다 이어 서 바닥을 전면 다 깔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있는 게 온수 보일러다. 1인용짜리가 하나 있 고, 와트 수가 40와트밖에 안 되는 제일 낮 은 거 하나를 구비해서 자고, 나는 실험한다 화분에서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 하 면서 화초를 동시에 키운다.
  • 22. 고 퇴근하고 오면 빨간색 물주머니를 끓여놓고 신체부위 어디에다 끼고 자면 따뜻할까 실험하고 잔다. 나름 실험이랍시고 호통을 쳐가면서 하고 남편은 몸도 안 좋고, 너무 차가우면 안 좋을 것 같아서 전자파 없는 온수 매트를 하 나 샀다. 남편은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을 치유하는데 술 문 제가 좀 있다. 그래서 예전에 술을 먹으면 소주 9병~10병까지 혼자서 먹었 다. 죽으려고 먹는 거지. 그러면 눈이 완전히 풀려버리더라. 사람이 거의 맛 이 가버리더라. 남편이 워낙 그래서 일단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가 2주 정 도 있다 나왔다. 그런 상태까지 갔었는데, 제일 고마운 것은 대치동 연립주 택은 햇빛이 굉장히 조금 들어와서 낮에도 거의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두웠는 데 이 집에 들어와서는 햇볕을 받고는 엄청 자더라. 늘어지는 고양이처럼 엄 청 많이 자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 남편은 학교 쪽 관 련된 일은 일절 안하고 이제 논문을 쓰면서 자기 나름대로 일을 하겠다고 한 다. 어찌됐든 그런 과정에서 마누라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거지. 그래 서 얼마나 이혼하자고 생난리를 떠는지... 사람 마음이 멀어지니까 옛날에 부부였던 게 어떤 거였는지도 몰라. 완전 공포의 대상이야. 말 한 마디, 행 동 하나부터 나를 어떻게 하면 골탕 먹일까 그러는데 심지어는 회 뜰 때, 물 고기가 된 것 같더라. 회 한 포 한 포 뜰 때 그 사람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겠 나... 그래서 사람이 꼭 두드려 패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화가 전달되고, 나에 대한 미움이 막 배어나올 때 그걸 받아내는 건 매 일매일 수행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가난했기 때 문에 그것도 짧은 시기에 회복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 가 상담사를 찾아가서 남편들 술 문제가 있는 아줌마들 모임에 나갔다. 성당 모임이었는데 그 분들을 만나서 1년 반 정도를 교육 받았다. 처음 갔을 때 거 기 모인 여섯 명의 아줌마들의 80프로가 남편을 알코올 중독 병원에 보냈더
  • 23. 라. 한 열 댓 번 보낸 아줌마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었다. 근데 그 아줌마들은 너무 예쁜 거야. 옷도 예쁘게 입고 화장도 하고 얼굴이 발랄한데 나만 제일 후줄근해서 깜짝 놀랐다.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나는 조금씩 수행을 하고 매일 아침마다 절을 하고 남편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돌리고 했기 때문에일 년 뒤, 나는 좀 편안해졌는데 그 분들은 계속 공부를 해야 되는 상태로 남아 있더라. 병원에 갔다가 집에 다시 오면 또 몇 달 있다가 남편을 병원에 보내 는 거지. ‘저 사람이 나를 때릴 것이다, 저 사람이 나가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다’라는 공포감이 한 달, 석 달 정도 되면 남편이 뭘 안 해도 막 소설을 써서 집어넣게 만들더라. 이게 뭐지?, 뭐지? 하면서 아...수행을 해야겠구나 생각 했다. 현대사회에서 마음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약을 먹고 좋은 기관에서 요 양을 하는 게 아니라 없으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을 나누는 게 훨씬 더 빠른 치유법이 아닌가 한다 그때 참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외식도 할 수 없었고 쇼핑을 할 수도 없었다. 세끼 모두 집 밥을 먹어야 했다. 예전 엔 외식 많이 했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본인 몸이 좋아지고, 애는 학교 갈 때 돼서 학교 가고 나는 또 이렇게 되고. 각자가 자기 생활의 영역을 잘 지켜나갈 수 있었다. 돈이 있는 아줌마들은 알코올 중독 병원에 보내려면 나 라 보조 받아도 매달 최소한 8~90은 있어야 된다. 좀 형편 좋은 데 가려면 200만 원 정도 든다. 나는 돈이 없어서 보낼 수 없었지. 돈이 없기 때문에 오 히려 우리한테 득이 된 게 있었다. 남편이 나에 대한 미운 마음이 조금씩 녹아나면서 엄청 추운 어느 날, 온
  • 24. 수 매트를 옆으로 대주더라. ‘오늘은 여기 와서 자라’ 이렇게. 그래서 그 날 3 년 만에 남편 옆에서 처음 잤다. 이제는 거의 예전의 남편으로 복귀를 했는 데 아직도 술 먹으면 미운 마음이 드는지 ‘니가 그 때 나한테 그랬지..’얘기 는 하지만 어쨌든 멀어진 사람 마음 돌릴 수 있는 길은 돈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적게 쓰면서 접촉을 하면서 녹아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겐 그 게 큰 교훈인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마음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약 을 먹고 좋은 기관에서 요양을 하는 게 아니라 없으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 감을 나누는 게 훨씬 더 빠른 치유법이 아닌가 한다. 술병은 죽어야 해결된 다고 다 그랬다. 이게 고쳐지는 병이 아니고 다 죽어야 되는 병이라고 했는 데, 남편이 덜 했기도 했겠지만 특별히 약 먹은 것도 없고 그냥 이렇게 살면 서 나는 계속 보는 거지.‘저 사람 마음이 어떻게 돌아오나’ 하고. 특히 알코올 중독자들은 느낌이 냉하다. 새한빛병원에서 법륜스님 법문 테이프를 틀어주 고 나누기 하는 걸 잠깐 했었는데, 4~50명 술 문제 있는 아저씨들이 모여서 법문 듣고 나누기 하고 했다. 그런데 다들 느낌이 참 냉하다. 외로움이라던 지 고독감이 사무친 느낌이랄까. 하여튼 지내면서 보니 이렇게 없이 시골 가 서 살고 하는 게 치료하는데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 : 물품 재활용하기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윤 : 나는 무슨 물건을 보던지 ‘이것으로 뭘 할까?’ 고민을 한다. 그게 참 재미있다. 백화점에서 일하기 전에 유기농 매장에서 잠깐 일을 했었는데 유 기농 매장에서 일을 하면 상품이 들어있는 박스라든지 진짜 쓸 만한 것들도 많은데 일단은 분류해서 버려야 했다. 그래서 참 연구를 많이 했다. 박스가 오면 투명 테이프로 한번 되감아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재활용해서 쓰기도 했 다. 같이 일한 친구들을 좀 번거롭게 했었는데 가장 크게 바꾸었던 건 비닐
  • 25. 대신 보자기를 사용한 것이다. 아무리 시장바구니를 갖고 오라고 해도 안 가 져 왔다. 손님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사장님하고 잘 얘기를 해서 했는데 아 는 손님들 중에 ‘집에 보자기 있으면 저희 주실래요?’ 해서 보자기를 가지고 묶었다. 양쪽에 끈을 묶어서 이효재 주머니같이 했다. 거의 2년 일하고 나올 때는 대부분 다 비닐을 안 쓰고 보자기로만 포장해서 줬다. 하여튼 재활용은 먼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직도 지나가다 쓸 만한 게 있으면 다 주워온다. 우리 집에 있는 건 거의 100% 다 주워온 것들이다. 하나씩 하나씩 주워 오다보니 지금은 거의 세팅이 웬만큼 됐다. 화초도 거의 다 버리는데 가져다가 키우면 살아난다.그렇게 재활용을 하고 있다. 김 : 요즘 ‘자발적 가난’, ‘청빈’ 이런 얘기가 사회적으로 되게 많다. 그런 부 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 : 책이 나왔더라. 「더 적게 벌고 더 행복하기」그 책을 읽어봤는데 만약 에 내가 새로 직장을 구한다면 생활을 하는데 최소한 얼마가 있으면 가능한 지 생각부터 해봤다. 아주 최소한으로 잡으면 보험료, 통신비, 난방비, 식비 해서 한 120만원 들어가더라. 그래서 직장 잡을 때 한 120만 원 이상만 잡으 면 된다. 120만원을 받으려면 주당 한 40시간 정도 하면 된다. 주 5일 근무 하면 가능하다. 이렇게 사회 시스템에 내가 맞춘다.그러다 조금 더 돈이 필 요하다 싶으면, 지난번은 하루 10시간해서 180만 원 받았다. 180 받으니까 정말 넉넉하다. 법당에도 돈을 좀 내야 하고...어쨌든 사회적인 시스템하고 내 시스템하고 맞추면서 한다. 남편 상태를 체크해야 해서 너무 돈 버는 것 에만 빠져있으면 안되고 그런 걸 좀 배려해가면서 일하는 시간을 잡고 있다.
  • 26. 분리와 재활용이 철저한 모습 낡은 부채도 간단히 새 것으로 어쨌든 한 120만 원 정도면 우리 집은 그런 대로 살 수 있다. 이렇게 잡아놓으니까 편안 하다. 막연히 ‘내가 얼마가 있어야 되는데 당 장 수중에 돈이 없다’가 아니라 ‘어느 정도 줄 이면 되는구나’하고. 초반에는 한 80만 원 정 도 갖고 썼는데 좀 쪼들렸다. 교회 다니는 사 람이 쌀도 주고 해서 어떻게 넘어가고 했는 데 그러면서 느낀 것은 ‘아, 다 살아지는 거 구나!’. 대신에 폼 잡을 수 있는 건 없는 거 지. 누구에게 밥을 사준다든지, 폼 나게 기부 를 한다든지.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삼보수호비를 만 원 으로 올렸다. 그렇게 내 생활을 조금씩 업그 레이드 시켜가면서 사는 것도 재미있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 “너는 이제 용돈 없다. 네가 벌어서 해라. 그리고 일단 대학 갔으니까 등륵금은 알아서 하다가 안 되면 우리는 문경으로 간다” 이렇게 세뇌 교육을 시켰는데 지금까지 2년 동안 딸아이가 장학금도 다 받았 다.그래서 한 푼도 안 들었다. 그리고 용돈은 지인의 한의원에서 주말에 일 하면서 번다. 남편이 말을 안 해도 큰 딸처럼 작은 딸도 본인이 시켜야하는 데 못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는데 저렇게 생활을 잘해놓으니까 아빠도 마음 이 편안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 보지 말고 그냥 각자 자리에서 잘 살자, 그리고 아빠가 건강해지면 그게 제일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그 냥 편안하고 각자가 편안하다 보니까 지금은 그냥 잘 산다.
  • 27. 하여튼 적게 먹고 적게 쓰기에 내가 정말 얼마까지 쓸 수 있느냐를 솔직하 게 체크를 해 놓으면 편안해 질 수 있었다. 돈이 적기 때문에 당장 사고 싶 은 것을 못사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거는 요번에 못 사면 석 달 후에 산다’ 이 렇게 되기 때문에 크게 부족한 건 없다. 아직까지도 냉장고, TV 잘 버텨주고 있고 남편 몸도 병원에 안간 상태에서 그냥 잘 버티고 있고, 그래서 그런 것 들이 서로가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구하는 생활로 바뀌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우리가 아침마다 공부하면서 ‘어 떻게 그게 가능하게 되지?’ 하는 관점으로 바뀌었다는 것 최 : 돌이켜보면 이 에코붓다 프로젝트를 빈그릇운동 하고있던 시점에서 구 상했던 것 같다. 그 때 윤태임님, 김월금님 강의 사례를 들으면서 저분들의 삶이야 말고 진짜 앞으로 모델이 될 텐데....없어서 안사는 게 아니라 있어도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가난하게 사는 이런 삶이야말로 보편화 되어야 하 지 않느냐 이게 현인들이 한 이야기인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렇게 실천하시는 분 만나서 인터뷰도 해보고 싶 고 정리를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게 기억이 난다. 궁금한 것이 몇 가 지 있는데, 지금 윤태임님 입장에서는 쓸래야 쓸 수 없는 돈이고 정말 최소한 의 필요한 만큼만 벌어서 사시는 분인데 일상적으로 소비가 필요한 때, 그러 니까 사람을 만날 때. 특히 가족이나 친척을 만났을 때최소한 밥도 못 사주게 되는데 그러실 때 약간의 부담감이나 보시를 못했을 때 심적으로 어땠을까 하 는 궁금함이 든다. 윤 : 연구하는 생활로 바뀌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우리가 아침마다 공부 하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게 되지?’ 하면서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관점으로
  • 28. 바뀌었다는 것. 집안에 돈 좀 써야 될 때가 가끔씩 있다. 그 때 한 번 돈이 왕 창 나가면 내가 막 휘청거린다. 조카 둘이 졸업을 하니까 못해도 10만원 씩 두 번 주고 나니까 그 다음 달은 막 힘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통장에서 십만 원하고 이만 원씩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최 : 누군가가 윤태임님에게 인생관이나 가치관은 뭐냐고 물어본다면 뭐라 고 답을 줄 것인가? 윤 : 아직은 확고하지가 않지만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뭘까...나는 사회적 기업에도 들어가고 싶고 협동조합에도 들어가고 싶고 얼마 전에는 공유경제 에 대해 들어보니까 사업 아이디어가 없더라. 이걸 갖다가 이윤을 남기고 이 렇게 하는 거는 없더라. 그래서 ‘내 인생관은 뭐였지?’ 라고 생각을 하게 됐 는데, 별로 없었다. 아침에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좀 주어지면 좋겠고, 한 달에 한 번 도반들과 자자 포살하는 정도. 매 주 법회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 고, 정말 이렇게 그냥 간소해지는 것. 뭐 특별한 인생관은 없고, 조금 더 한 다면 이번 주에 지리산 수련원 깨장 바라지를 신청했는데 거기서도 내가 뭘 한 번 실험해 보고 싶으냐면 ‘내가 과연 바라지를 할 수 있는 민첩함이 남아 있을까?’이다. 내가 백화점에서 제일 떨어졌던 게 뭐냐면 나이를 먹었더라 고. 뭘 하면 빨리 빨리 안 되고. ‘아, 여기에 있는 것이 내 욕심이구나’. 왜냐 면 화장을 하고 날 가꾸고 이러는 것도 하던 버릇이 있어야 되는 건데 그래 서 욕심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해서 그만두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그만 뒀다. 이번에 공동체에서 살 때에도 ‘내가 과연 쫓아갈 수 있을까?’ 이것부터 또 한 번 실험을 해봐야겠다. 지난번에 저녁 반에서 회의를 했는데 그 때 무 슨 일이 있었냐면 잠시 봉사활동을 쉬다가 다시 들어온 봉사자들 중에는 ‘정
  • 29. 토회가 나를 좀 이해 못한다’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근데 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토회가 당신을 맞춰줘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거 기에 맞춰야 한다’고. 정토회 안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자기가 힘을 기르 는 거라고. 그래서 인생관은 그냥 그런 정도의 힘을 키워서 같이 살 수 있으 면 좋겠다. 그런 것 말고는 인생관은 별로 없다.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화합시키고, 둘이서 싸우면 한 사람 불러다가 맛있 는 거 사주고. 이런저런 얘기하고 이러면서 계속 나 스스로 저 사람들하고 내 가 소통이 되고 있구나 최 : 끝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 에코보살 프로젝트도 우리 삶의 모델 을 찾아서 정리를 해보자고 하는 건데, 일반시민들한테 우리가 어떻게 다가가 면 좋을까? 그렇다고 수행을 해라,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윤 : 나도 고민이다. 내가 백화점에 뭘 하려고 왔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 문제 말고. 거기에 있는 언니들하고 지내면서 뭔가 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면 난 잘나 보이고 싶은 거야. ‘난 너희들하고 다르거든’ 이 생각이 자꾸 드는 거야. 그러면 내가 본격적으로 뭘 추구하고 싶지. 이럴 때 인격적으로 좀 존경을 받고 싶어 하더라. 그래서 일단은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화합 시키고, 둘이서 싸우면 한 사람 불러다가 맛있는 거 사주고. 이런저런 얘기 하고 이러면서 계속 나 스스로 저 사람들하고 내가 소통이 되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나중엔 자기네 집 얘기 다 하고 자기 남편이 뭘 했단 얘기 다 하 고 이렇게 되긴 되더라. 그런 것들을 계속 실험을 해봤는데 인격적으로 그런 모델?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어떤 식의 모델들이 만들어지듯이 그런 모델들 이 되는 거?
  • 30. 김 :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말하는 것 같다. 윤 : 각자가 그런 인격체가 되는 거지. 그러고 아까 운동의 관점을 잘못 잡 았다고 얘기했던 게 뭐냐면 내가 너무 터트리는 식의 운동을 했었다. 노동운 동도 그렇고, 학생운동도 그렇고. 옆에 있는 언니들한테 백 번 이상 스님 법 문을 보내줘도 답변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대학교 동창들에게 보냈을 때 에도 거기서 내가 뭘 느꼈냐면, SNS가 다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공감 없이 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구나’ 나는 옛날에 공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먹으로 쥐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부터 해보고 나랑 비슷한 사람이 모여들 때 같이 나누어보고. 그럴 때 조금 확산을 시켜보고. 그렇게 보면 백화점 언 니들한테 배워서 장아찌, 오이지도 담갔고 매실 장아찌도 많이 담갔다. 옛날 에는 그런 거 몰랐다. 그런데 진짜 그 분들은 일을 하면서도 매실장아찌 담 그고 오만가지 부모시대부터 해왔던 거 다 해먹고 있더라. 산과 들로 나물들 을 따러 다니며 훌륭하게 자기 삶을 잘 끌어가고 있더라. 그래서 아까 말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없다’가 아니라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아’ 그런데 거기 에 이름을 붙이고, 운동을 만들고 이러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두북, 봉화, 지리산에 청정마을을 하나 만들어서 그 곳에 사람들이 와서 보 고 나가고. 지내면서 쓰레기제로와 전력 줄이기도 해보고.그런 걸 하나 해보 면 어떨까 싶다. 백화점 언니랑 얘기가 되면 한 명씩 데리고 법문 들으러 갔다. 그러면 자랑 할 만한 것은 결국 ‘저 사람이 우리 스님이다’가 아니라그 사람이 나를 볼 테 고 법륜스님 제자라면 먹는 거나 뭘 잘 쓰는 지도 볼 테고, 회관에서 우리는 이렇게 한다고 보여줄 게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토회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예전에합정동에 빈그릇 식당 있었
  • 31. 는데 없어졌다. 정토회에서 그걸 다시 한 번 해보면 어떨까. 덕소에서 신도 분이 농사를 오천 평을 지으신다. 그런데 쓸 데가 없는 거야. 그걸 계속해서 하시긴 하는 것 같은데 그 싸게라는 것도 거사님으로서는 어렵잖아. 그리고 회관에서 뭘 팔고 하는 것도 안 되고. 그래서 거기를 조금 더 세팅해서 농사 를 짓게 하고, 보살들 중에 없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런 사람들이 거길 가서 농사를 짓고 돈은 안 받지만 농산물도 갖다 먹고, 식당을 개업해서 낮에 1시 부터 2시까지는 빈그릇 식당 해서 돈 내고 먹게 하고 그 옆에는 재활용 매장 하나 하고 공정무역 카페 하나 하고 이런 센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사회 적 기업이라든지 협동조합이라든지 정토회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모임이 있 다니까 한 번 거기에 들어가서 내가 할 형편은 못되지만 세상 흐름을 구경이 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최 : 최근에 정토회 내에 계속 사람이 늘고 있다. 지역 법당도 늘고. 그래서 지역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어떤 분의 제안을 예로 들면 ‘한 곳에 모여서 하는 공동체는 모델이 만들어져야 되지만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법당에 와서 그냥 자원 봉사만 하는데 공동체로서의 삶도 꾸려볼 수 있게끔 실현도 해보자’ 이런 제안도 있다. 예를 들면 카쉐어링사업이나 공 동구매도 할 수 있다.그런 것도 사업 구상으로, 환경 사업으로 정토회에서 지 역단위로 시범사업으로 그 분들끼리 네트워크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윤 :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서도 교육을 엄청 시키더라. 신고해야 되고 구 직활동을 위해서 상담, 심리검사부터 해서.. 그래서 이번에 한 번 해볼 참이 다. 나한테 적합한 직업이 뭘까.. 그런 것도 있고 구청이나 이런데도 일자리 센터,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이것을 어떻게 잘 연결을 하면 좋겠다. 이 집이 워낙 추우니까나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번 겨울에는 난로
  • 32. 를 놓아볼까, 이런 생각을 해서 보니까 마포 쪽에는 난로를 만들어서 보급하 는 공동체가 있더라. 살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여러 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그게 좀 더 발전하면 사업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활동을 너무 안에서만 하지 말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도입을 하고. 공유경제도 얼마나 멋있나!. 집에서 남는 책, 남편 이사 올 때 경제학 책이 최소한 몇 백 권은 버려야했다. 집이 좁으니까. 근데 그건 또 일반 도서 하고는 다르지 않나. 그래서 아름다운 가게로 보냈더니 그쪽은 쓸데가 있다 한다. 그런 책들을 마을의 어느 공간을 마련해서 같이 다 공유하는 일을 한 다고 한다. 여하튼 그렇게 할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다. 김 : 이제까지 질문에 답변해 주셔서 고맙다.
  • 33. 내가 맑아지면 주변도 맑아진다 김영주 | 부산 특집-에코보살 심층인터뷰 김성균(이하 “김”) : 정토회는 언제 알게 되었나? 김영주(이하 “주”) : 2006년 봄 불대부터니까 인연이 된지는 한 7년 됐다. 김 : 정토회와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주 : 스님의 ‘참회’라는 테이프를 들었는데 아주 생소했다. 절에 다니긴 했 어도 법문이 파격적으로 들렸다. 그 후 울산 법당에 테이프를 사러 갔다가 마침 스님의 직강이 있어 법문을 들었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개한테 목걸이를 걸고 개를 끌고 다니면 내가 주인이고 끌려 다니 면 개가 주인이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늘 이렇게 괴로운 삶을 살겠구나’ 하 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줄곧 법당에 나갔다. 정말 쉬지 않고 불대 공부 하고 경전반 공부를 했다. 그리고 공양간 돕는 일을 바로 시작했다. 내가 전
  • 34. 에 다녔던 절과 다르게 무한정 베풀 수 있는 곳이라 좋았다. 공양 반찬을 집 에서 해서 갖다 나르고 하는 것이 너무 신났다. 그러면서 7년이 됐는데, 지금 은 집전까지 할 수 있는 인연이 주어져서 참 감사하게 잘 다니고 있다. 김 : 술 때문에 남편분과 힘들었 다고 했는데 정토회 만나기 이전 생활과 최근의 삶을 비교하면 어 떤가? 주 : 정토회 만나기 이전은 지 옥인데 지금은 천당이다. 정말 지 옥과 천당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남편이 술을 먹고 주사를 부리면 그땐 지옥이고 또 괜찮아지면 천당에 갔다가... 이제는 남편이 지옥으로 갖다 놓아도 천당으로 빨리 올 수 있는 방법이 있 더라. 요즘에는 내가 공부를 하니까 남편도 공부를 한다. 법당은 안다니는데 집에서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하고 술도 줄였다. 남편에게 ‘해주십시오’ 라고 안했는데도 자기 스스로 하는걸 보면 이게 스님 법문인 ‘내가 맑아지면 주변 이 맑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최광수(이하 “최”) : 환경 실천 부분에서 문제점이 기억나는가? 주 : 처음 정토회에 왔을 때 철저하게 하더라. 참 낯설었다. 그렇게 살지 않다가 여기오니까 하나에서 열까지 제재가 너무 많아 힘들더라. 집에 가서 는 실천이 잘 안 되지만 법당에서는 철저히 하고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되니 인터뷰 하고 있는 김영주님
  • 35. 나중에는 거부감 없이 하게 되더라. 김 : 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나? 주 : 여기 와서 얼마 안됐을 때 스님의 환경에 대한 법문을 들었다. “환경 실천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자연을 훼손한 만큼 자연이 우리한테 큰 재앙을 줄 것이다. 인간이 자연한테 할 수 있는 보답은 자연보호밖에 없다.”고 하셨 다. 한 해 나오는 쓰레기 양으로 북한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충 격을 받았다. 법당에서 하는 만큼 하려고 애를 쓰는데 집에서는 그게 쉽지 않더라. 워낙 제사도 많고 해서. 그러나 꾸준히 하려고 노력을 했다. 이제는 집에서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김 : 그럼 그전에는 어떻게 했나? 주 : 그냥 자연스럽게 버렸다. 철저하게는 안했지만 절약을 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은 있었다. 한 7년 쯤 되니까 좀 더 달라졌다. 김 : 뭐가 더 달라졌나? 주 : 첫째는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집이 주택이라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 묻는다. 마당이 넓어서 음식물 쓰레기 모아두면 남편이 곳곳 에 잘 묻는다. 그러니까 올해는 호박이 아주 잘 됐다. 마당에 지렁이가 굉장 히 많다. 김 : 지렁이를 가져다 놓은 건가? 주 : 아니다. 자연산 지렁이다. 음식이 있으니깐 계속 생기더라. 과일 나무 도 마당에 좀 있다. 음식을 자꾸 묻어주니까 과일이 굉장히 많이 열린다.
  • 36. 현희련(이하 “현”) : 세상에서 제일 좋은 유기질 비료니까 지렁이 분변토 때 문에 과실이 잘 되는 것 같다. 주 : 과실이 달다. 최 : 시장은 자주 보나? 주 : 요즘 비싸서 잘 사러 가지 않는다. 있는 거 먹는다. 김 : 대형마트는 주기적으로 가나? 주 : 잘 안 간다. 백화점은 아예 가지 않는다. 최 :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고 있나? 주 : 분리수거를 철저하게는 못하고 있다. 태그를 떼어낸다든지 이렇게는 안하는데 비닐 모아서 장사하는 할머니들 갖다 주면 좋아한다. 최 : 세탁은 어떻게 하나? 빨래를 모아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돌리나? 아 니면 매일 하나? 주 : 세제 쓰지 않으려고 빨래비누로 손빨래해서 세탁기로 돌린다. 팔이 안 좋으니깐 헹구는 게 힘들어서 씻어서 헹굼은 세탁기에 한다. 최 : 수도요금은 얼마나 나오나? 주 : 7천원 정도 나온다. 현 : 물 진짜 안 쓰는 것 같다. 물은 재활용하는가? 주 : 씻고 걸레 빨고 한 건 마당에 나무가 있으니까 뿌려준다.
  • 37. 현 : 정토회 만나서 환경 실천하면서 아끼게 되고, 덜 쓰게 되면서 어느 정 도 절약이 되는지? 주 : 예전에 100만원 쓴다고 치면 지금은 한 30-50만원. 김 : 전체 총량으로 봤을 때 그 정도 줄여 쓴다는 뜻인가? 주 : 비율이 그렇다는 말이다. 쓸 일이 별로 없다. 애들이 없으니까 외식을 전혀 안 해서 외식비 드는 게 없다. 과일, 생선, 육류도 잘 안 먹게 된다. 돈 을 아끼려고 하니까 엄청나게 아껴지더라. 다른 사람들은 쓰면 좋다고 하지만 나는 죄를 짓는 것 같다. 내가 올해 환 갑인데 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게 중심이 잡히는 것 같다. 돈을 많이 쓰지 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회가 되는 부분이 많다. 북한에서는 저렇게 죽어가는 아이들도 있는데 지금은 돈 쓰는 사람이 오히려 좀 안쓰럽다. 너무 몰라서 저렇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 잘 썼으면 좋겠는데 주 : 잘 썼으면 정말 좋겠는데, 안이한 눈으로 날 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모임을 다 끊고 한 두 개 밖에 없다. 김 :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모임을 끊은 사람이 많다. 시간도 없고. 주 :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많이 든다. 예전엔 재미있었는데 이 젠 여기가 더 재미있다. 김 :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주 : 첫째, 내가 필요에 의해 쓰인다는 것이다. 찜질방 가고 어디 가고 그
  • 38. 게 재미있다고 하지만 여기에 오면 내가 쓰일 곳이 있다. 거기 가서 돈 들여 쓰는 것 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 다 보니 가장 보람된 것은 내가 남한테 도움이 되는 거다. 그렇게 되니 나머 지들이 미미해지고 재미가 없다. 오늘도 모임이 있는데 문학회 모임이다. 내 가 숙제 당번인데도 거기 안가고 그냥 벌금을 낸다. 이제 재미가 없고 의미 도 없어졌다. 최 : 그렇게 사회생활을 좀 정리하고 이렇게 봉사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는데 그러다보면 보시를 많이 할 것 같은데 남편분이 반대하거나 하지 않나? 주 : 남편은 내가 하는 일에 아무런 터치를 안 한다. 생활은 본래부터 내가 꾸려왔으니까 알아서 쓴다. 옛날부터 터치를 안했다. 최 : 매일 이렇게 출근하고 봉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노터치인가? 주 : 남편도 이 쪽 공부를 좀 하니까 이해를 한다. 내가 나가면 오히려 남 편이 더 좋아한다. 어떨 때는 내가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 참선에 들려고 하 는데 방해된다고 싫어한다. 내가 나가줘서 참 고맙다는 날도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니까. 최 : 서로서로 복 받은 거다. 주 :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든 것도 참 많았지만 이게 젤 행복하다. 각자 자 기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제일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최 : 남편분이 술은 좀 많이 줄었나? 주 : 술을 아예 끊었다. 서서히 안마시더니 얼마 전에는 참선 공부를 해보
  • 39. 니 이게 마장이라면서 술 담배 완전히 끊어버렸다. 서너 달 됐다. 최 : 두 사람이 환갑 되어서 금슬도 좋아지고 술도 딱 끊고, 노후 초입에 확 바뀌어서 자녀들이 뭐라고 하나? 주 : 집안 분위기가 편안하니까 우리 애들이 참 좋아한다. 현 : 정토회 와서 환경실천을 너무 철저하게 해서 처음에 조금 힘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제일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나? 주 : 공양간 일을 하니까 쓰레 기를 (저울에)달아서 재야하고 기 록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 고 수박 제일 바깥 껍질만 버리고 속껍질까지 다 먹어야 한다. 수박 의 흰 부분까지 볶기도 하고, 졸 여도 보고 채소로 무쳐도 보고 온 갖 것을 다해도 쓰레기가 나올 때 가 많이 힘들었다. 최 : 그렇게 오자마자 철저하게 실천해야 했을 때 주변 봉사자들과 부딪힘 은 없었나? ‘왜 이걸 해야 하냐’ 라든지. 주 : 정토회는 참 이상한 게 누군가 속으로는 분별이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드러내놓고 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더라. 여기는 이렇게 하나보다 하고 따 라하지, 그렇게 분별을 많이 안 내더라. 인터뷰 하고 있는 김영주님
  • 40. 현 : 요즘 울산 법당 공양간은 어떤가? 주 : 공양담당이 따로 있고 보조 역할을 한다. 굉장히 철저하게 하더라. 한 사람당 몇 그램 정해 놓고. 현 : 조리할 때 그렇게 계획을 세워서 하나? 주 : 남는 것 보다 적은 게 낫다고 감자 5개 12인분으로 계산하고. 아주 철 저하게 해서 놀랬다. 현 : 발우 공양할 때 그렇게 한다. 감자 하나 가지고 5명이 먹는다고 계산해 서 40명이면 딱 8개만 요리를 한다. 왜냐하면 반찬마다 모두 1인분을 계산하 면 많아져 버리니까 하나 가지고 보통 몇 쪽을 먹느냐 계산을 해서 그걸 가지 고 사람 수를 계산한다. 그렇게 안 하면 남는다. 주 : 거의 남는 게 별로 없더라. 반찬 딱 두 가지 김치 한 가지. 최 : 무게를 재서 한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 왜냐면 정토회 법당들이 막 늘 어나고 있는데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이런 게 표준화 되어 있으면 음식 쓰레기 가 나오지 않는다. 주 : 아까도 칭찬했지만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김 : 환경실천 대중화를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 주 : 정토회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자를 만들어서 우편함에라도 꽂아 놓아보면 좋겠다. 불교 TV에서도 환경 실천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 홍보가 너무 안 되고 있다. 전부 몰라서 다 버린다.
  • 41. 최 : 정토회 오기 전부터 근검절약을 했는데, 후배 초심자들에게 충고나 제 안이 있다면? 주 : 주위사람들을 보면 ‘기부를 하자’ 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단돈 만원이 라도 기부하면 즐거울 것이라며 아이들한테도 하도록 했다. 기부하는 돈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 내가 만족을 얻기 위해 쓰는 것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쓰는 것이 좋다. 현 : 초심자에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 생명을 살리는 삶에 동참을 해 보면 저절로 절약은 따라온다는 뜻인 것 같다. 최 : 인터뷰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 42. 에코붓다 지부 환경의 달 캠페인 편집부 특집 - 환경의 달 소식 남편이 야간 봄 불대 다니면서 동기 도반님들이랑 식 당에 가서 빈그릇하는것을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중국 집, 해장국집에서 빈그릇 하는 거 보고 쉬운 게 아닐텐 데 잘 하고 다녀요. 설거지 해주면서 집에서도 빈그릇 잘한다고 칭찬 받았네요. 큰애, 작은애들 도시락과 자 기들 그릇을 보면 항상 깨끗합니다.
  • 43. 김인숙님은 아들의 야식을 사러 밤 10시 넘어 통을 들고 김밥과 비빔만두를 사왔어요. 일회용 줄이기 실천^^ 장사하시는 분이 잠시 당황하셨다네요. 경전반 수업후 개인컵 가져오신 분들께 한잔!! 우와 맛나다! 손수건 받침해서 마시니 음 ~~스 멜!!! 환경실천 2주차 자기컵 쓰기. 예쁜 주전자에 산미나리 씨앗차를 대접했어요. 향기가 너무 좋네요^^ 환경실천 첫째주-빈그릇운동(쓰레기제로운동). 오늘 주간 불대생 들은 깨끗이 닦아먹었어요. 마음까지 깨끗해지네요. 북삼법회 야간 불대생이 떡볶 기 간식을 준비하셨어요. 요플 레통을 재활용해오셨네요 환경실천은 냉장고 청소부터. 냉장고를 청소하고 남은 음식 먹기
  • 44. 그릇 닦아먹고 계신분이 불교대 햇 도반님이세 요. 달서법당에서 수행법회와 화요불교대에서 빈그릇 실천내용입니다. 빈그릇실천 환경주간에 불대 경전반 수요 법회에서 공지를 하고 4월 16일 수요법회 를 마치고 다 같이 실천해 보았다. 공양후 깨끗하게 닦아먹은 공양접시를 보 고 환경실천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 니구나라고 느끼며 환한 얼굴로 한컷~~ 법당에서 뒷물수건 만들기를 하고 계신 분들은 불교대생들이십니다. 환경지킴이는 이웃이 아닌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일입니다.^^ 가정에서의 실천은 떡볶이 사먹을 때 그릇 가져 가기.
  • 45. 환경주간 캠페인을 맞이하여 불대생들이 공양시간에 모두 개 인컵과 손수건을 전시하듯 놔두고 점잖이 포즈를 취해 보았습 니다. 황순옥님은 외식할 때 작은 통을 가지고 다니며 밥을 미 리 덜어 보관했다고 합니다. 모둠 법회때 자기컵과 손수건 가져가기를 실천 해보았어요. 우리 모둠은 카페에서 법회를 열었는데..... 모두들 우리의 이런 모습을 자랑스러워했구요. 불대 수업과 수행 법회때 자기컵 가져오시는 분들 맛난 차 대접하기를 했어요. 제가 집에서 직접 수정과를 끓여서 나르느라 이틀 동안 쌩 고생 했구요. 부처님 오신날 빈그릇운동 문구 코팅해서 셰프 모자 만들어서 쓰시게 했더니 많은 분들이 즐 거워하고 음식물도 거의 남지 않았답니다.
  • 46. 청주 봄불교대학과 천일결사 모둠방인 "무상절절 방"에서 4월 환경실천의 달을 통해 실천한 환경 활동 내용은, 생활 속에서 빈그릇 운동 실천, 자 기컵 사용하기, 물 아껴쓰기 등이다. 먼저 밴드를 소통과 나눔의 틀로 이용하여 실시 간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를 나누며, 격려와 칭찬릴레이를 통해 실천활동 을 증가시켰다. 또한 서로간에 다른 정보와 실천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더 실천에 박차를 가해 몸 소 체험해보며, 환경에 대한 심각성과 실천의 어 려움을 느끼며 반성과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몸소 실천을 통해, 자기 자신만이 아닌, 자신의 변화가 주위를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것을 느꼈던 한 달이었다는 공통된 의견이었다. 앞으로도 환경실천은 계속 될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시골이다. 주민과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다. 추운 겨울이면 주민 들은 경로당이나 회관에 모여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계신다. 경로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릇을 씻고 커피와 술을 마시고 설거지하기 불편하셔서, 손쉬운 일회용 컵과 접시, 젓가락들을 많이 사용하시고 태워버린다. 보기에 참으로 안 타깝다. 청주 모둠방 ‘무상절절방’ 이번주 환경실천 미션 수행하기
  • 47. 3년 전부터 회관에 일회용품 안쓰기 안내문을 주방에 붙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일회용품을 사 용하지 말자고 교육 중이다. 지금은 어르신들은 편하지만 손자와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끔찍하시 기에 손자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자고 꼬셔보기도 한다. 요즘은 조금씩 일회용컵과 나무젓가락을 덜 사용하시고 나를 보면 슬금슬금 일회용품을 숨기기도 한다. 커피나 음료수도 밥그릇에 사용해 마신다. 내가 와서 치워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힘들지만 조금씩 고쳐가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좋다 서초법당 회의 때 개인컵 사용하기와 경 전반 빈그릇실천 모습입니다. 그리고, 계피차를 끊여 자기컵 가지고 오 신분들에게 대접했습니다.
  • 48. 성동법당 빈그릇 실천하 는 모습입니다. 안 닦이는 건 딸기랑 사과로 싹싹 닦아먹었다고 합니다. 빈 그릇하기와 3단계 설거지 앞으로도 쭈~욱 실천해 볼랍니다. 빈그릇 실천 자기컵, 손수건 사용 하기 입니다. 나날이 발 전하고 있습니다. 환경주간 공지를 하고 정기법회와 불대 수 업후 자기컵 갖고 다니기와 그릇닦아먹기를 더욱 열심히 실천 해보았습니다.개인컵 갖고 오신 분에게는 따끈한 박하차를 드렸습니다. 다음에는 더 맛난차를 준비해야 할것 같아 요. 호응이 별로여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일산법당 수행법회 후 공양시간. 환경주간행 사 중. 인증샷 찍기하는 환경담당자를 위해 맞은편에 앉아있던 두 보살님이 사진을 의식 하며 다 닦아먹은 접시를 다시 한 번 더 깔끔 히 한 후 포즈~
  • 49. 작은 씨앗이 싹이 되어 큰 나무를 이루듯이 김선우 | 장호원고등학교 교사 쓰레기제로 현장 소식-1 귀영이, 환호, 동수, 홍섭이, 동윤아! 선재, 태근이, 지용이도 잘 지내고 있니? 오늘은 떠들썩하게 장난치며 비누젓기하던 저 자리 넘어 쌍무지개가 떴구나. 잔소리하면서는 가까이 할 수 없어 시작한 비누 만들기가 보건실의 명물이
  • 50. 되었단다. 승민이와 수민이가 종이컵에 만든 EM비누가 첫 작품이었고, 두부 판에 부어서 만든 비누는 2호가 되었단다. 장호원중학교에 가서 빈 우유곽을 수거하여 늦게까지 헹구고, 말리던 3학 년 여학생들. 운동하는 태근이는 늘 무릎이 아파서 자주 상담하면서 우유곽 을 자르고 정리해주었는데... 아침부터 EM발효액에 양잿물을 붓고 녹여서 준비해둔 용액을 보건실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수시로 막대기로 저으며 상담을 하니 거리감이 없어지고 마음도 열어 나누기를 하게 되었지.당뇨가 있는 선재는 아침을 굶고 군것질 만 해서 양배추 주스를 만들어 비만학생들과 함께 양배추주스 마시기를 같이 하며 EM비누 만들기, 홍보, 봉사활동으로 불우이웃돕기까지 활동영역을 넓 혀 나아가게 되었구나. 긴 시간 발효된 비누를 모아 후배 영식이와 희선이는 선생님의 안내로 전 세계 환경운동의 모델인 에코붓다에 정성스럽게 보냈단 다. 애들아! 작은 씨앗이 싹이 되어 큰 나무를 이루듯이 너희들의 힘 이 모여 환경도 살리고, 마음나누기도 하고, 그 결과물로 이웃돕기까지 하게 되었으니 작은 행동과 마음이 모여 무엇으로 되어 나타나는지 기대해 보자꾸나. 올해도 후배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볼거야. 너희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사랑한다. 잔소리꾼 보건샘이.
  • 51. 3학년 여희선 친구들과 보건선생님과 함께 비누 만들기를 하게 되었다. 발효비누는 EM발효액을 사용해 만드는데 비누를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많이 신기했다.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며 서로 고민을 들어주어 많이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보건선생님과도 많은 이야기 들을 하며 즐겁고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환경오염과 수 질오염, 재활용등 환경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시다 발효비누 만들기 활 동을 생각해 내신 것 같다. 우리가 만든 비누로 물을 깨끗하게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 할 수 있어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재미있게 비누도 만들고 봉사도 할 수 있고 환경문제에 대한 예방도 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 리가 만든 비누로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 바자회를 열 어 비누를 판매하고 그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기로 하였다. 바자회는 학교축 제 때 열렸고 바자회를 통해 EM발효액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홍보했다. 이 비누 만들기 활동으로 인해서 환경문제에 대해서 좀 더 곰곰이 생각 할 수 있었고, 지금 학교부회장으로써 좀 더 봉사하여 뜻 깊은 일들을 조금씩 해 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 52. 3학년 강영식 보건선생님과 많은 상담과 조언을 많이 듣고 다니면서 천연 비누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하셔서 저는 처음부터 비누를 만들어보았습니다. EM발효액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비누의 효능과 여러 가지의 비누 등을 알게 되었 습니다. 비누만들기 프로그램을 보건선생님과 같이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 고 조언도 많이 듣고, 고민이 있으면 고민도 들어주셨습니다. 친구들과 만 들기도 했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3학년 형들과 같이 했습니다. 형들과 같이 할 때, 형들이 대학교, 취업 등에 대한 정보를 짬짬이 알려주었고, 고민도 같 이 해주었습니다. 저는 비누 만들기 프로그램의 조교를 했습니다. 녹차비누, 숯비누 등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학교축제에서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바자회에서 비누를 기부도 하고, 판매도 했습니 다. 이천 온천공원에서 진행하는 바자회에도 참석 했습니다. 참여하면서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후배들에게 잘 알려서 후배들과 함 께 학교 환경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 53. 음식물쓰레기 제로에 도전해 보기 손효은 | 서울 쓰레기제로 현장 소식-2 지난해 12월 한살림 서울 남부지부로부터 오래된 조합원모임에 초청을 받 았다. 한살림의 밥상살림, 농업살림, 지역살림, 생명살림의 꾸준한 활동들을 듣고 요리강사님께 요리도 배우며 푸짐한 식사 대접을 받았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한살림 조합원이 된지 어언 20년, 그동안 여러 공동체의 생산지를 찾아다니며, 친환경농법을 고수하는 생산 자님들을 만나 뵙고, 감사의 마음과 먹거리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며 살아 올 수 있었다. 『생명의 근본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든 자연환경, 햇빛과 그늘, 바람과 도랑을 흐르는 작은 물까지도 귀하게 여겨 사랑을 나누 고자 합니다.』
  • 54. 한살림이 지향하는 생명운동의 한 부분인 환경운동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남부지부의 환경 분과원으로, 에코붓다의 봉사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임이 끝날 무렵, 한 켠에 놓여있는 가득찬 음식물쓰레기 봉지가 정토회 관의 음식물쓰레기 양과 너무도 비교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소모임과 요리강의가 많은 모임방의 특성상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이 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의무감(?)으로 지부활동가에게 한살림 남부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강의를 해보겠다고 자청하였더니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날짜를 맞추어보자고 했다. 지렁이가 활동이 활발한 4월로 정하여, 각 매장에 『음식물쓰레기 제로에 도전해 보기』란 제목으로 안내 공지를 2-3주간 하기로 했다. 강의 당일 날, 인사를 나누고, 먼저 한살림 조합원들은 어떤 형태의 환경운 동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모두들 20년 전의 나의 모습처럼 안전한 먹거 리를 이용하기 위해 조합원이 되었을 뿐, 여태까지는 환경운동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조합원들은 한살림 물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2-3가지의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조금은 의아해 하면서 열심히 강의에 집중해 주셨다. 첫째, 한살림 물품들은 생산자분들께서 제초제, 화학비료, 농약 등을 사용 하지 않고 친환경농사를 짓고 계신 덕분에 땅을 살리는 환경운동을 하고 있 고, 둘째, 국내의 가까운 이동거리로 인해 화석연료를 이용한 에너지 사용량과
  • 55.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셋째, 매장에 갈 때는 언제나 개인용 장바구니를 자연스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으니 나무를 살리고, 숲을 살리는 환경운동이 될 수 있다. 네번째, 확실한 생활실천이 따라야 하는 빈병 재사용으로 생기는 잉여에너 지를 지구를 살리는 뜻 깊은 실천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강의를 들으 시고 자신들도 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신 듯 잠시 활기찬 이야기 를 나누셨다. 이어서 에코붓다에서 가져간, 환경실천 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한 가정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드렸다. 자신들은 생각지 도 못한 가정에서의 실천을 보고 놀라워 들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음식물쓰레기제로 6단계에 들 어가기 전, 먹을 것이 없어 탈북을 결심 한 새터민들이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보고 가슴 아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했을 때는 잠시 숙연해지는 분위기 였다. 우리 모두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면 경제적 손실을 줄여 못먹는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각성의 계기가 된 듯 했다. 6단계 내용인 ①냉장고 정리, ②장보기, ③조리하기, ④남기지 않고 다 먹 는 빈그릇 하기, ⑤지렁이를 이용한 퇴비화, 흙을 이용한 퇴비화, ⑥텃밭 가 음식물쓰레기제로 6단계 설명중인 모습
  • 56. 꾸기 까지 PPT로 설명을 드린 후, 가지고 간 지렁이를 보여드리고, 흙을 이 용한 퇴비화 과정을 시연해 보여 드렸다. 앞자리까지 나와서 꼼꼼히 적고, 언제 분양받을 수 있는지 관심을 보이셨다. 집에서 만들어간 수박 껍질 쨈은 대단 한 인기였다. 서초매장에서 즉석에서 구입한 식빵 에 발라 시식들을 하시고는 모두들 올 여 름 수박껍질로 잼을 만들어 드시겠다고 하니 여름이 지난 후 물어보아야겠다. 그 많던 수박 껍질들은 누가 다 먹었을 까?.... 지렁이는 지금 서초매장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나는 가끔 떼어놓은 지렁이의 안부가 궁금해 서초매장에 들린다. 지렁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 57. 진정 강을 보려면 강을 직접 걸어야 이리나 | 청년포럼 중앙운영위 소속 현장탐방프로젝트 스텝 청년 생태기행 작년 4월에 시작한 현장탐방프로젝트가 처음 간 곳, 경북 영주 모래가 흐르 는 강 ‘내성천’. 우연인지 인연인지 올해 첫 현장탐방프로젝트가 다시 찾았습니다. 사실 내성천은 작년만 해도 두 번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2009년부터 진행된 4대강사업으로 해가 갈수록 강은 변하고 있는 강이기 에 우리의 관심이 더 절실한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작년에는 내성천 지킴이에
  • 58. 앞장서고 있는 지율스님의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의 개봉으로 더 큰 관심과 궁금증을 안고 있던 참가자들이 실제로 다녀온 뒤로 아름다운 모래 강 내성천 앓이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입소문이 퍼졌는지 청년학교 수료생들 사이에서는 내성천 꼭 한번 가 고 싶은 곳, 가야하는 곳으로 통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내성 천을 향해 찾아간 강은 그 새 더 헐벗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 다. 이번 현장탐방은 4월5일 식목일 을 맞아 영주댐이 완공되면 물속에 잠길 수몰예정지인 영주 평은면 강 둑 언저리에 있는 지율스님 텐트주 변으로 청년들이 나무심기를 진행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과 대구 부산 등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은 본격적 인 나무심기에 앞서 일단 신발을 벗어두고 강에 들어갑니다. “진정 강을 보려면 강을 직접 걸 으며 느껴야한다”는 스님의 지론! 며칠 전 갑작스런 꽃샘추위로 쌀쌀 한 날씨에 다들 물에 발을 담그는 진정 강을 느끼기 위해 강을 걷고 있는 참여자들 지율스님께서 준비하신 모종을 심고 있는 참여자들
  • 59. 순간 탄성이 나왔습니다. 내성천 맑은 물을 품은 모래는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아닌 강물 속에서 흘 러 흘러 퇴적중인 모래는 곱기도 하지만 제법 알맹이가 있어서 덕분에 천연 지압마사지를 했습니다. 차가운 강물에 놀란 것도 잠시 강에 들어서자 더 크게 다가오는 강변의 변 화였습니다. 왕 버들 나무가 잘려나간 강둑과 수몰될 높이만큼 나무가 잘려나 가 속살을 훤히 드러낸 산을 병풍삼아 걸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와 나무심기 일정상 스님 텐트주변 강을 조금 거닐어 본 후 다시 올라와 나무심기에 돌입! 지율스님이 미리 영주 시장에서 준비하신 묘목과 모종들을 팀별로 배분해 심었습니다. 구절초와 쵸크베리 해당화 매발톱 등 야생에서도 잘 자랄 수 있 는 것들로 고르신 스님. 청년들은 서툴지만 열심히 삽으 로 땅도 파고 직접 물을 길어와 한 그루 나무의 뿌리를 땅에 내렸습니 다. 더 이상 스님텐트 주변이 허전 하지 않게 다양한 꽃들도 심고, 꼭 3년 뒤에도 5년 뒤에도 무럭무럭 이 자리에서 자라나길 기대하면 심내성천 안내판
  • 60. 는 청년들. 어차피 물에 잠길 수몰지구에 왜 나무를 심지? 라는 물음이 들 수 생길 수 있습니다. ‘어차피..’.라는 생각에 잠기던 순간 스님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수차례의 소송과 속전속결의 공사 진행, 거대 기업과의 재판과정 속에서 다 시 내성천이 본연의 모습을 찾을 가능성을 흔히들 1% 아니 0.1%로 봅니다. 혼자 수차례 소송을 겪고 수없이 강을 다니고 있는 제가 생각하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일까요? “90%에요. 막연한 상상의 희망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희망이 없다면 버틸 수 없죠. 영남의 젖줄 낙동강을 도보로 다섯 번을 왔다 갔다 다녀보니 그제야 비로소 강이 보였다는 스님. 스님의 희망은 ‘막연한 것 이 아닌 정말 현실적인 것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 을 해봅니다. 강을 다니며 본 스님은 단지 모래톱과 물줄기를 본 것만은 아니겠지요. 물의 흐름이 막혀 강바닥이 드러나는 지금의 내성천이 다시 본연의 모습을 찾아 다음세대들이 누릴 아름다움을 보셨을 겁니다.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
  • 61. 나무의 삶도 물의 삶도 잠기는 곳 그 속에 사는 노루, 삵, 수달, 강아지, 흰수마자의 삶, 수 백 년 은 넘었을 마을의 역사, 누군가의 고향, 백로와 먹황새의 쉼터, 왕 버들나무 뿌리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 다. 물론 세상 그 모든 건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변화의 대상이 일으키는 순리의 것이 아니라면.....? 약 8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내성천 정비 사업으로 보를 건설하고 제방을 쌓 고 자전거 길을 만들고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정말 누구를 위한 필 요인지. 만약 철저하게 ‘인간’에 맞춰진 편의와 여가생활, 효율적인 물 사용을 위한 것이라면 저는 내성천을 감싸 안는 언덕을 수없이 뛰어다녔을 노루에게 한없 이 부끄러워집니다. 물 부족과 홍수피해를 해결한다는 이유에 22조 원이 넘어가는 국가재정을 투입해도 주민들은 홍수피해를 더 걱정하고, 제방을 다시 쌓을 지도 모르는 우려가 생기고 있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피 나무심기에 참여한 청년들~
  • 62.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잠깐 이지만 내성천을 걸으면서 수달 과 철새들의 흔적을 봤으니까요. 우리는 나무심기가 마무리되고 내성천 하류가 간직한 절경을 보기위해 회 룡포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시간이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에 다다르고 참가자 들이 각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 간단하게 나누기를 하고 차에 올랐습니 다, 다들 내성천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대부분 정작 식목일에 나무를 심어 본 것은 처음이라며 뿌듯하다는 이 야기가 많았습니다. 또, 반대를 위한 반대 입장이었 던 4대강사업에 대해 오히려 객관 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 닫고 이 사안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의견부터 이렇게 거대한 사 업의 필요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내가심은 한 송이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 만 으로도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뿌듯해지는 하루였습니다. 비록 가까이서 보지도 갈 수도 없는 내성천이지만 작은 뿌리하나를 그곳에 내렸다는 것 자체가 나와 그곳이 연결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도 내성천을 향해 90%의 희망을 가져야겠습니다. 내성천에서 스님말씀을 듣고 있는 청년들
  • 63. EM발효액 만들기 편집부 부뚜막수다 쌀뜨물이 심각한 수질오염원 중 하나라는 것을 다들 알고 계시지요? 쌀뜨 물 3L를 정화하려면 오염되지 않은 물 1톤(약 440배)이 필요합니다. 이번 호에는 수질오염원인 쌀뜨물을 이용하여 EM발효액을 만드는 방법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잘 읽어보시고 환경실천에 함께해 보시기 바랍니다. <EM발효액 만드는 방법> 준비물 : 2리터 pet병, 쌀뜨물, EM원액 소주잔 한잔, 설탕 소주잔 한잔, 천일염 소금 1/2t(정제염 안됨) 1) 페트병을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2) 처음 쌀뜨물은 버리고 두 번째부터 받는다.(유기농은 첫 번째도 가능) 3) 쌀뜨물을 약간 미지근하게 데운다.(여름은 그냥 해도 좋음) 4) 페트병은 위에서 4cm 남겨두고 쌀뜨물을 병에 붓는다. 5) EM원액, 설탕, 소금을 넣고 잘 흔들어 준다.(소금, 설탕 녹도록) 6) 약간 따뜻한데 두면 빨리 발효가 된다.(냉장고 뒤쪽, 햇빛 있는 곳은 안됨)
  • 64. 7) 다음날도 한 번 더 흔들어 준다. 8) 그 다음날부터 병이 팽팽해지면 가스를 빼준다. 9) 두 번째 가스를 빼면 사용해도 된다.(막걸리 같은 냄새가 나면 성공) *실패원인 : 병이 깨끗하지 않을 때, EM원액을 너무 적게 넣었을 때, 농 약이 묻은 쌀뜨물일 때 <사용처 및 사용방법> 1) 소독 ①행주, 도마, 병, 용기 등은 분무 후 10분 이상 두었다 헹구어 사용한다. ②변기, 하수구는 EM발효액을 부어 준다. ③바닥 청소는 걸레를 발효액에 담궜다 살짝 짜서 닦는다. 2)악취 제거 ①여름 장마철에 걸레, 빨래를 50배 희석액에 담궜다 짜서 말린다. ②신발, 신발장에는 분무하되 너무 많이 뿌리지 않는다. 3)해충, 벌레를 죽이거나 쫓을 때 - EM발효액에 계피를 넣어 우려낸 후 분무한다. 4)식물을 키울 때 - 콩나물, 화초, 채소를 키울 때 EM발효액을 100배 희석하여 분무한다. 5)기타 ①샤워 후 몸이나 머리 헹굴 때 60~70배 희석하여 사용한다. ②무좀에는 EM발효액에 매일 1~2회 10분정도 발을 담근다. ③음식물 쓰레기에 발효액을 뿌려서 흙에 묻어주면 퇴비가 된다. * 의문사항이나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서울정토회 환경 팀(02-587-8997)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65. 지난 4/21, 4/28 강원경기동부지부에서 일명 ‘환경실천 DNA 물들이기’ 워크숍을 2회 진행 하였다. 1주차 코스에서는 ‘정토회에서 환경활 동을 하는 이유’, ‘에코붓다에서 빈그릇운동을 시작하고 확산하는 과정’, 그리고 ‘우리가 법 당에서 어떻게 빈그릇을 실천하고 쌀뜨물 3단 계 설거지를 할 것’인지를 주제로 진행하였다. 설 거지 3단계 동선을 그려보고, 수행법회에서 직접 해보기로 하였다. 2주차 코스에서는 음식물쓰레기 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생활실천 방법을 공유하고, ‘수박껍질 쨈, 수박껍질조림, 식은밥피자’를 만들어 보면서 음식 물쓰레기제로를 직접 실천해 보았다. 서울제주지부에서는 10년 이상 사용되어 오던 분리 수거함을 리모델링하였다. 버려지는 박스를 이용하여 사이즈에 맞게 통을 만든 후, 여러 번에 걸쳐 초배지를 바르고, 지나간 달력에서 오린 야생화를 잘라 붙였다. 마지막으로 못 쓰는 끈을 꼬아 만든 손잡이를 단 후,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니스칠을 하는 것으로 리모델 링 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니스칠 대용으로 양초를 칠 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에코붓다 이모저모
  • 66. 지난 4월 27일 서울제주지부에서는 조계사 전통문화마당에 참여하여 환경부스를 진행하 였다. 시민들에게 친환경적인 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대안상품을 소개, 판매하고, 에 코붓다의 쓰레기제로운동을 알리기 위해 환 경실천 5가지를 판넬을 이용하여 스티커붙이 기 행사도 진행하였다. 특히,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자기컵을 가지고 오신 분들에게 매실차 대접하기 행사 를 진행하였는데, 생각보다 자기컵을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 4월 일산지부에서는 봄맞이 나비바자 회(나누고 비워서 가볍게~) 진행하였다. 사 전 공지를 시작으로 집에서 안 쓰는 천을 이 용하여 임시게시판을 만들고 봉사자 를 요청하여 소임을 나누는 등 꼼꼼 하게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바 자회를 하고 남은 물건은 아름다 운가게에 기부하였다.
  • 67. 지난 5월 1일 인천지부에서는 내 마음의 푸른마당을 열어 뒷물 수건 만들기를 진행하였다. 바느질하면서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가 재미있어서 웃 음바다가 되었고, 팀원들 간의 친목이 돈독해지는 시 간이었다. 올해 초부터 마산지부에서는 이성우님이 주축이 되 어 환경살리기 실천 운동의 일환으로 음식물 쓰레기 를 이용한 지렁이 배양과 EM발효액을 이용하여 친 환경 퇴비 만들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산법당이 있는 건물 옥상에 친환경 텃밭을 조성할 계획으로 1차 적으로 폐스티로폼과 폐화분을 이 용하여 작은 텃밭을 조성하고 있습 니다.